EASY한 세계여행

노르웨이 베르겐, 송네 피오르드

저의 스칸디나비아 여행은 즉흥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코펜하겐으로 입국하여 다시 코펜하겐에서 출국하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여행이 탄생했습니다. 평소 가기 힘든 북유럽을 여행하기로 했으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도 최대한 즐겨보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투자한 것이 바로 덴마크 히르츠할스에서 출발해 노르웨이 베르겐으로 향하는 피오르드 라인(Fjord Line) 크루즈였습니다.
글 _ 강이석

 

스칸디나비아, 뜻밖의 여름 속으로



피오르드 위에서 보낸 특별한 밤

크루즈는 약 16시간 동안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피오르드 해안을 따라 항해합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크루즈 여행을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경험했습니다. 당시 자취방보다 훨씬 넓은 퀸사이즈 침대와 고급스러운 욕실을 갖춘 객실에서 지낸 하룻밤은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갑판에 올라 해안가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푸른 바다를 거칠게 항해하는 배들을 보니 비로소 피오르드 여행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왕국에서 만난 무더위

베르겐은 영화 ‘겨울왕국’ 속 아렌델의 모티브가 된 도시입니다. 연중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서안해양성 기후라, 비록 한여름이었지만 서늘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착한 날 기온이 무려 섭씨 35℃에 달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노르웨이 할아버지는 평생 처음 겪어본 기록적인 더위라고 했습니다. 베르겐 시민들은 분수대에 뛰어들거나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하며 뜨거운 여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베르겐 중심부는 아기자기한 구시가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베르겐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베르겐 산 정상에 오르면 시내와 항구, 그리고 북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습니다. 베르겐 산 정상 부근에는 작은 호수와 캠핑장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바비큐 파티를 즐겼습니다. 한밤중까지 해가 떠 있는 북극권 특유의 백야 현상으로 오후 11시가 넘도록 대낮처럼 밝은 이색적인 파티가 계속되었습니다.






숲을 지나 협곡으로, 피오르드의 품에 안기다

이제 본격적인 피오르드 여행을 시작해 봅니다. 베르겐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피오르드 중 하나인 송네 피오르드 여행의 중심지입니다.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이동하는 여정 속에서 기차, 버스, 페리, 산악열차를 번갈아 타며 피오르드의 다채로운 매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베르겐에서 출발한 기차는 빠르게 도심을 벗어나 울창한 숲속으로 달려갑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웅장하면서도 거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알프스의 아기자기한 느낌과는 사뭇 다릅니다. 산악도시 보스(Voss)에 도착한 후 이곳에서 구드방엔(Gudvangen)으로 향하는 버스로 갈아탑니다. 버스는 아슬아슬한 산악도로를 굽이굽이 돌며 피오르드 협곡의 장엄한 경관을 가까이서 보여줍니다. 굽은 길을 따라 왼편과 오른편에서 번갈아 펼쳐지는 절경은 여행자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피오르드 속으로 스며든 하루

구드방엔에서 다시 플롬(Flam)까지 가는 페리로 갈아탔습니다. 페리는 피오르드 협곡을 따라 조용하지만 웅장하게 항해합니다. 피오르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경험은 이번 여행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높은 절벽과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폭포들이 매 순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페리를 따라오는 갈매기들이 여행자들이 준 과자를 경쟁하듯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순간 한국의 월미도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페리를 타고 도착한 플롬은 피오르드 여행의 허브와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미르달(Myrdal) 역으로 향하는 산악열차에 오릅니다. 노르웨이에서도 가장 가파른 것으로 유명한 이 산악열차는 깎아질 듯한 산길을 천천히 오르며 투명하고 커다란 창문으로 피오르드의 원시적인 자연경관을 생생하게 전달해 줍니다.
 

 




 

마침내 피오르드 여행의 최종 목적지 미르달 역에 도착했습니다. 한여름이었지만 산 정상에 위치한 이곳에는 곳곳에 만년설이 눈에 띕니다. 역사 내부는 작지만 아늑한 분위기입니다. 저는 산악 열차 옆자리에서 만난 브라질 교수님과 역사 안에서 각각 가져온 술과 음식을 나누며 오슬로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슬로행 기차 안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해 열차 운행이 잠시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물론 잠깐 놀라긴 했지만, 이 낙천적인 여행자들은 이런 돌발 상황조차 여행의 일부로 즐기며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열차는 곧 다시 운행되었고, 기차를 타고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숲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피오르드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2025-05-01

강이석: 춘천여자고등학교에서 지리 교사로 재직 중이다. 동시에 유튜브 채널 ‘지리는 강선생’을 활발하게 운영하는 동영상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여행이 부르는 노래》 《하마터면 지리도 모르고 세계여행할 뻔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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