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밤, 우연히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서유럽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남부 유럽의 나라 포르투갈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반드시 포르투갈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듬해, 이베리아반도의 끝자락으로 유럽의 또 다른 매력을 찾아 떠났습니다.
글 _ 강이석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중심지, 리스본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유럽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바다처럼 보일 정도로 드넓은 테주강(Rio Tejo)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있는 항구 도시죠. 포르투갈의 전성기인 15세기 대항해 시대에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상공업 도시로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한 해일과 화재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 시가지의 절반 이상이 소실된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당시 사망자만 수만 명에 달해,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지진 중 하나로 기록되죠. 이로 인해,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은 적은 편입니다.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코메르시우 광장(Praca ado Comercio)으로 향합니다. 코메르시우는 포르투갈어로 상업을 뜻하는데, 테주강 연안부두를 통해 무역 상인들이 드나든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드넓은 광장에 들어서자, 대서양의 따사로운 바람이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을 맞이합니다. 광장에서 테주강을 따라 걸으며 바다 끝에 낭떠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떠난 15세기의 탐험가들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트램을 타고 즐기는 야경
리스본은 7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로맨틱한 인생 사진을 남기기 좋은 야경 명소가 꽤 많습니다. 대표적인 장소로 그리사 전망대(Miradouro da graca)가 있습니다. 리스본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로 밤에는 조용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상 조르제 성(Castelo de Sao Jorge)의 야경도 추천합니다. 중세 성곽 위에서 보는 야경이 압도적이죠. 성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카페에 앉아 노을 지는 하늘빛을 감상해 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풍경을 즐기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봅니다.
포르투와 아줄레주 벽화
리스본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포르투까지 이동합니다. 창밖으로 푸른빛의 대서양이 펼쳐집니다. 지중해성 기후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항구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국가명의 어원이 된 도시입니다. 로마시대부터 발달한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포르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상 벤투(Sao Bento)역은 역사 전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이자 미술관입니다. 역사 벽면에 파랗게 그려 넣은 청쾌한 아줄레주 벽화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줄레주 벽화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전통적인 타일 예술로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리 위 건물의 화려한 아줄레주 벽화가 푸른빛의 항구 도시인 포르투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포르투의 아기자기하면서도 동화같이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는 순간입니다.
포트와인과 해리포터
포르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트와인의 산지입니다. 포르투의 이름을 딴 디저트 와인으로, 당분이 남아있는 발효 중간 단계에 독주인 브랜디를 첨가한 것이죠. 그래서 일반 와인의 알코올 함량이 9% 내외인 것에 비해 포트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20% 정도이며, 당도 또한 높아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합니다. 소도시인 포르투의 웬만한 명소는 충분히 걸어서 여행할 수 있습니다. 렐루 서점은 포르투갈의 오래된 서점 중 하나입니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영감을 받은 곳으로 영화의 호그와트 도서관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해요. 덕분에 서점 입구에는 전 세계 해리포터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서점의 반대편으로 10분 정도 걷다 보면 포르투의 중심을 흐르는 도루강과 이를 가로지르는 루이스 다리가 보입니다. 이 다리는 파리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인 테오필레 세리그가 건축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루이스 다리에서 에펠탑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루이스 다리 위에서 대서양의 따사로운 서풍을 맞으며 잠시나마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를 오롯이 느껴봅니다.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