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공지능

인공지능이 우리를 심판한다면

사건 혹은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진행되는 재판, 이때 인간과 인공지능 중 누가 더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법조계에선 인공지능의 역할과 그 필요성, 그리고 인간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을 판단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글 _ 이장우 (한국인공지능포럼 회장)




몇 년 전, 영국에서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졌다.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 소속의 변호사 100여 명이 인공지능 변호사 ‘케이스 크런처 알파(Case Cruncher Alpha)’와 맞붙은 것이다.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판결 결과를 예측해보는 대결이었는데, 놀랍게도 인공지능 변호사가 승리를 거두었다. 775건의 판결 중 대형 로펌 변호사들은 66.3%, 인공지능 변호사는 86.6%의 적중률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100여 명의 변호사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여준 인공지능 변호사 ‘케이스’는 미국 법률전문잡지 《내셔널 로 저널(The National Law Journal)》이 선정한 ‘2018년 인공지능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인공지능이 법에 대한 관념을, 법조계의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공지능 변호사

2018년 10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세계 3대 경매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가 진행하는 경매가 열렸다. 당시 경매장에는 17세기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그림 한 점이 등장했는데, 이 그림에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캔버스의 가운데에만 그림이 있고 바깥쪽은 아무 덧칠도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아직 완성이 다 안된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그림의 낙관이었다. 대부분 화가들이 그림의 한쪽 끝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과 달리, 이 그림에는 알 수 없는 수학 공식만 쓰여 있었다.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극한 이 작품은 무려 43만 2500달러(약 4억 95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낙찰가를 합친 것보다도 두 배나 큰 금액이다. 헌데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던 건, 어마어마한 낙찰가가 아니라 작품의 작가였다. 바로 프랑스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인공지능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단순 모방이 아니라 창작으로 만들어진 그림. 이 그림은 당시 ‘창작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뒤엎어버린 사건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인공지능이 창의성을 갖게 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인공지능 화가는 14∼20세기의 1만 5천여 작품을 학습한 끝에 이 그림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학습한 결과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그려냈을 뿐이다. 쉽게 말해, 수많은 작품을 겹쳐서 만들어낸 그림인 셈이다.




제1회 알파로(Alpha Law) 경진대회 (출처 _ 아리랑뉴스)

 

판사처럼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인공지능

인공지능과 인간 변호사의 대결은 한국에서도 펼쳐졌다. 2019년에 열린 ‘제1회 알파로(Alpha Law) 경진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AI연구소 인텔리콘이 개발한 인공지능과 국내 변호사들이 각각 제한 시간 내에 근로계약서를 읽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대회였다. 승패는 문제를 읽고 분석하는 ‘시간’에서 갈렸다. 변호사는 문제를 읽는 데만 몇 분이 걸렸고, 분석하는 데에는 20~30분의 시간이 더 걸렸다. 반면, 인공지능은 계약서 내용을 7초 만에 분석하고 결과를 내놨다. 대회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인공지능이 월등한 모습으로 승리했다.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 변호사를 대신해 우리를 변호하게 되는 걸까. 앞으로는 변호사를 구할 때 인공지능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인공지능이 변호사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한다. 앞서 말한, 알파로 경진대회를 사례로 들어보자.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었지만, 인공지능은 사실상 인간 변호사와 인공지능의 합동 팀이라고 봐야 한다. 인공지능의 승리에는 인간 변호사의 능력이 포함되었다. 속도와 정량적 요소에선 인공지능이 능력을 발휘했지만, 종합적 자문과 같은 정성적 요소의 데이터를 쌓을 땐 인간 변호사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한 팀을 이루었던 변호사들도 이를 인정했다. 그리곤 인공지능의 장점과 인간의 능력을 잘 활용한다면, 다양한 영역에서 더 빠르고 좋은 판단을 기대할 수 있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좌: 인공지능 판사 ‘컴퍼스’ (출처 _ 노스포인트)
우: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AI와 법 그리고 인간’ 심포지엄 (출처 _ 대법원)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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