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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에셋 안주원 본부장

안주원 본부장은 그의 나이 스물셋에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보험 영업에 뛰어들었다. 영업을 시작한 첫 달에 전국 실적 1등을 하더니, 그해의 신입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최연소 본부장이 되었고, 4명으로 시작했던 그의 팀은 어느새 430명의 본부가 되었다. 이제 고작 서른두 살, 안주원 본부장을 만나 영업의 비결을 물어봤다.
글 _ 배나영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연봉 10억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놓지 않은 '긍정 마인드'

 

“어릴 때 힘들게 자랐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어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잘 몰랐겠죠. 저는 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늘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어요.”
안주원 본부장은 당진시 합덕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일 때문에 천안에 계셨고, 아버지는 대형화물차를 운전하느라 일주일에 딱 하루만 집에 계셨다. 아버지가 김칫국을 한 솥 끓여두고 나가면, 당시 9살의 그는 동생과 함께 물을 붓고 끓여 먹었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겨울에 입던 패딩을 여름까지 입고 다녔지만, 그때까지도 동네 아이들이 왜 자신을 놀리는지 몰랐다. 정작 마음 아픈 기억은 따로 있다. 고등학생이 되자 급식비 미납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학교 방송에서 이름이 불렸다.
“방송이 너무 공포스러웠어요. 저는 친구들에게 인기있던 소위 ‘인싸’였는데, 제가 못사는 모습을 들키는 게 너무 창피했죠. 방송이 나오면 화장실에 숨어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도 벌고, 성취감도 느꼈다. 그는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언제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냈다.





경쟁률 72:1의 직장을 그만둔 이유

 

중학교 때부터 하던 연극 동아리에 푹 빠져 대학교에서도 연극을 전공했다. 군대에서 1년 만에 휴가를 나와 친구들의 공연을 봤는데 정말 멋있었다. 한데 이와 동시에 ‘이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대학을 그만두고 삼성의 고졸공채에 응시하기로 결심했다. 전역까지 딱 10개월 남은 상황이었다.
“전역하기 전 10개월 동안 단 하루도 TV를 본 적이 없어요. 저녁 먹고 남들이 TV를 볼 때 저는 혼자 창고에 들어가서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공부했죠.”
전역하고 2주 뒤, 삼성 고졸공채가 시작됐다. 경쟁률이 무려 72:1이었음에도 그는 보란 듯이 합격했다. 안정된 대기업에 다니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생각에 마음이 벅찼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건 당연했다. 1시간씩 미리 출근해 사무실을 청소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뭔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정해진 급여가 아니라 성과를 낸 만큼, 일 한 만큼 보상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재무설계를 하면 1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곤 그토록 힘들게 취업한 대기업을 떠나, 영업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영업, 그는 딱 한 달 만에 전국에서 영업 성과 1등을 차지했다. 56건을 계약하고, 3200만 원을 벌었다.
“전국 1등을 한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저는 보험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었어요. 보험설계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도 몰랐죠(웃음). 교육을 받아보니 상품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팔 수 있었어요. 그러니 영업이 잘될 수밖에요.”



변화의 바람을 타고 다시 도전


그는 영업을 시작하면서 목표를 세웠다. ‘전국에서 최고가 되자’ ‘억대 연봉을 받자’ ‘영업 임원이 되자’ 그리고 목표를 하나하나 이뤄나갔다. 쉼 없이 달려, 2년 만에 그 목표들을 다 달성했다.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번 달에는 좀 쉬엄쉬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계속 쉬엄쉬엄하게 되더군요. 더 이상의 목표가 없으니 슬럼프가 찾아온 거죠.”
그렇게 7개월을 실컷 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가 쉬는 동안 업계의 흐름은 바뀌고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마저도 제자리를 찾기까지 1년이 걸렸을 정도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목표를 부여하기 위해 GA(General Agency)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GA란 특정 보험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다수의 보험상품을 비교 · 분석하여 고객에게 판매하는 일종의 ‘보험 대리점’을 말한다. GA로의 이직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신입 사원이 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각 회사 보험상품의 장단점을 먼저 파악했다. 그리곤 고객에게 딱 맞는 최선의 상품을 선보였다. 실적만 좋으면 누구나 관리자가 될 수 있는 GA에서 그는 입사한지 6개월 만에 최연소 본부장이 되었다.

 


실력은 기본, 차별화는 필수

 

안주원 본부장은 영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차별성’을 콕 집었다.
“예를 들어볼까요? 교원그룹에 굉장히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죠. 그런데 왜 학부모가 ‘그’ 선생님을 선택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나만의 차별성이 있어야 해요. 나만의 차별성으로 브랜딩이 되면 굳이 영업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어요.”
안주원 본부장은 수많은 학습지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한 가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력은 기본이고, 차별화는 필수다.
“일단 나만의 차별화된 무기가 있다면 SNS든 방문판매든 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해요.”
덧붙여서 안주원 본부장은 SNS마케팅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의 게시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1년 내내 그를 대신해서 일하게 만든다. SNS에는 절대 상품 소개를 올리지 않는다. 대신 ‘나’를 브랜딩 한다. ‘잘난 나’가 아니라 ‘열심히 사는 나’를 꾸준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잘난 이에게는 질투를, 열심히 사는 이에게는 호감을 느낀다. 평소에 쌓아둔 호감은 영업에 도움이 된다. SNS는 일종의 포장이다. 실력이 없는데 포장만 번지르르하면 결국 무너지지만, 실력이 있다면 예쁜 포장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도전의 결과는 성공 아니면 배움

 

4년 전 4명의 팀원과 함께 시작한 조직은 현재 430명을 넘었다. 안주원 본부장이 면접을 본 인원만 해도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저는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근면, 성실함을 봐요. 그다음엔 이 사람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보고요. 마지막엔 투자마인드를 봅니다. 면접을 봐서 10명을 뽑으면 1년 후에 평균적으로 두세 명이 남아 있는데요.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 세 가지더라고요.”
안주원 본부장은 조직 구성원의 투자마인드를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서의 ‘투자’란 쉽게 말해 ‘자기계발’이다. 꼭 영업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자기계발을 위해 투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다시 신입사원이 된다면 매달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제게 투자할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에겐 인색해요. 자신의 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꿈을 꾸고, 도전을 거듭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온 안주원 본부장. 그의 다음 도전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졌다.
“이제는 얼마를 벌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보다 조직을 성장시키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안주원 본부장은 힘주어 말한다. 도전의 결과는 성공이거나 실패가 아니라, 성공 아니면 배움이라고. 그의 도전이, 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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