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 그릇

산행에서 만난
중생에 대한 감사

글 _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우리말의 어원을 살필 때 한자를 끌어다 붙이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그런데 어원 추적에 한자를 동원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도 ‘사냥’이나 ‘짐승’의 어원을 한자와 결부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단어에 들어 있는 ‘냥’이나 ‘짐’을 음으로 가지는 한자가 없거나 드물 뿐만 아니라 뜻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사냥’의 어원은 한자어 ‘산행(山行)’에서 찾는다. 말 그대로 산에 간다는 뜻인데 오늘날처럼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는 ‘등산’과는 목적이 다르다. 산으로 간다면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오랜 옛날에는 짐승을 잡기 위해서는 산에 가야 하니 ‘산행’ 자체가 오늘날의 ‘사냥’과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이다. 한글 창제 직후 1447년에 편찬된 《용비어천가》 125장에도 ‘산행’이 나오는데 ‘사냥’을 ‘산행’이라고 한다고 주석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산행’이 ‘사냥’이 되기까지 많은 변화가 필요하고, 설명이 잘 안 되는 면도 있지만 둘의 관계는 밀접해 보인다.

‘짐승’의 어원 또한 한자어와 관련을 짓는데 다소 엉뚱하게도 ‘중생(衆生)’을 그 어원이라고 보고 있다. 이 또한 《용비어천가》에 나오는데 오늘날과는 그 용법이 조금 다르다. 한자의 뜻 그대로 풀자면 ‘살아 있는 무리’ 전부를 가리키는 말이어야 할 텐데 오늘날에는 대개 사람에 한정해서 쓴다. 사전에는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풀이가 되어 있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이 뜻으로 거의 쓰지 않는다. ‘중생’이 ‘짐승’이 되는 것 역시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설명이 필요하고,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어원은 분명해 보인다.

‘산행’과 ‘중생’이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의 재료 중 커다란 한 축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식재료를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다. 풀과 나무가 식물성 재료를 대표한다면 물에 사는 물고기와 뭍에 사는 각종 동물들이 동물성 재료를 대표한다. 식물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채취가 쉬운 편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사람의 활동이 부자유스러운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니 잡기 어렵고, 뭍의 짐승들 또한 저마다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 얻기 어렵다.

동물성 식재료는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밥상에 오를 때에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오늘날에는 ‘반찬(飯饌)’이 밥 이외의 모든 음식을 가리키지만 과거에, 그리고 오늘날에도 특정 지역의 말에서는 물고기나 육고기로 만든 음식만을 가리킨다. 한자어 반찬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이 고유어 ‘건건이’ ‘즐게’ ‘햄새’ 등은 식물성 반찬만을 따로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인 대접은 재료를 구하는 것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에 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물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잡히지 않는다.

‘사냥’의 어원인 ‘산행’이 산에 가야 동물을 잡을 수 있다는 뜻이라는 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면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짐승’의 어원인 ‘중생’은 우리가 잡아서 먹으려 하는 대상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식물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속하겠지만 ‘중생’은 보통 동물을 가리킨다. 먹는 것을 가리는 불가에서 식물은 허용하되 동물을 금기시하는 것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에 사는 뭇 생명 중 ‘짐승’은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존재를 먹을 수밖에 없다면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사냥’이 ‘산행(山行)’에서 유래했다지만 짐승이 산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땅을 딛고 살아야 하는 동물들은 산뿐만 아니라 들에도 산다. 그리고 일부는 사람의 손에 잡혀온 후 길들여져 가축이란 이름으로 사람과 함께 산다. 정착 농업과 유목 등 저마다 삶의 방법이 정해지고 난 뒤의 고기 공급원은 바뀌게 된다. 위험하고 불확실한 사냥보다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고기를 구할 수 있도록 짐승을 직접 기르게 된 것이다. 그런 짐승들은 가축이란 이름으로 다시 불리게 된다.

중생, 짐승, 가축 그 무엇이라 부르든 우리는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인간의 지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육식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고기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식물성 음식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필수 영양소를 동물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채식으로는 낼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육식은 공급해준다. 그러니 고기에 대한 갈망은 정신적인 갈망이라기보다는 육체의 원초적인 갈망이다. 결국 갈망과 금기, 혹은 금지 속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먹지 말라고 해도 먹어야 하는 것이니 어떤 고기를 어떻게 먹을까가 중요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아껴 먹어야 하기도 하다. 요즘은 넘쳐나는 육류 때문에 오히려 병을 얻기도 하니 줄여 먹기도 해야 한다.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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