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처방전

먹을수록 피곤해진다
'고칼로리 영양실조'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산모 보양식을 챙길 만큼 산후조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아직도 어르신들은 산모의 몸보신을 위해 가물치, 흑염소, 잉어 등을 사다 주기도 한다. 그런데 ‘산후조리용’, 또는 환자의 ‘몸보신용’ 음식들을 보면 대개 고칼로리 음식이다. 충분한 열량 섭취가 어려웠던 옛날에는 칼로리를 보충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회복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르다. 오히려 우리는 넘쳐나는 칼로리가 건강을 위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글 _ 정가영(책 《면역력을 처방합니다》의 저자, 히포크라타의원 원장)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처럼,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당연한 명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많이 먹을수록 힘이 더 생길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우리의 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세포 속 엔진, 미토콘드리아
우리가 먹는 음식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음식을 잘 씹어서 섭취하면, 위와 소장에서는 위산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화효소를 분비해서 더 작은 입자로 쪼갠다.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과 같은 분자 단위까지 소화한다. 그중, 음식으로부터 분해되어 나온 포도당 입자들은 혈류를 타고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까지가 주요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세포 속 엔진’ 미토콘드리아로 들여놓는 일이다.
자동차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엔진에 기름을 넣어줘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속의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세포 속 엔진인 미토콘드리아에 포도당을 넣어줘야 한다. 이 과정이 잠시라도 중단되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먹은 음식으로부터 공급된 포도당이 미토콘드리아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꾼 영양소가 필요하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더라도 별도로 시동을 걸어 주고, 유지할 배터리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바로 비타민B군이다. 비타민B군 영양제를 피로회복제로 광고하며 판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칼로리 음식과 불균형
그렇다면 왜 고칼로리 음식이 문제가 될까? 우리가 주로 간식으로 즐겨 먹는 음식들은 높은 칼로리에 비해 비타민B군, 마그네슘 등의 영양소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것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도 시동을 걸어줄 배터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포 안에 포도당만 계속 쌓이게 되면, 결국 세포도 ‘이제 그만 들어와!’라며 문을 닫아버린다. 이것이 ‘인슐린 저항성’이며 당뇨 발생의 원인이다.
포도당과 비타민B군의 불균형은 자율신경계 기능 저하도 초래한다. 이유 없이 식은땀이 나거나, 가만히 있는데 맥박이 빨라지고, 집중이 잘 안 되며, 혈압이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를 통틀어 ‘기능적 자율신경실조’라 하는데 이러한 증상들은 공황장애로 오해받기 쉬워서 엉뚱하게 신경안정제를 처방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비타민B군 부족에 의한 자율신경실조는 올바른 식습관 교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다.

텅 빈 열량 식품
잦은 야근을 하거나, 회식으로 고칼로리 안주와 술을 자주 마시는 직장인들을 보면 ‘지방간’ ‘고지혈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들은 너도나도 흔하게 갖고 있는 질병이라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간과하고 지내다 보면, 결국 ‘과로사’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질병들이 ‘지방’을 많이 먹어서 생긴다고만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로도 발생한다. 잉여 탄수화물이 체내에서 지방으로 변환되어 간에 축적되고, 혈관에 쌓이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으로도 알 수 있다. 탄수화물 섭취가 과도하면 콜레스테롤 항목 중 중성지방이 증가한다. 이것이 150mg/dL이상이면 ‘고중성지방혈증’으로 진단한다. 300mg/dL이 넘어가는 높은 수치라면 즉시 생활요법을 바꾸고 약물치료도 고려해야 한다.


텅 빈 열량 식품(Empty Calorie Food)도 조심해야 한다. 텅 빈 열량 식품은 고칼로리 영양실조를 유발하는 음식들을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과자, 초콜릿, 케이크와 같이 밀가루, 백미, 설탕을 주재료로 하는 음식들이 해당된다. 이들은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필수영양소를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부전을 일으켜 ‘혈액순환장애’를 유발한다. 또한, 평범한 채식 위주의 집밥을 먹을 때와 비교해서 혈당을 급격히 올리기도 한다. 혈당이 올라가면 평소보다 많은 양의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 상태에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포도당이 소모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앞서 말한 것처럼 당뇨를 유발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당뇨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도당이 혈액 속에 머물게 되면서 혈액의 점도는 점점 끈적끈적해지고 평소엔 물 흐르듯 혈관을 다니던 혈액의 흐름이 느려진다. 즉 혈액순환 장애가 동반되는 것이다. 이는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처리해주던 신체 내 기관들의 업무 처리속도가 느려짐을 의미하며 또 다른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

현대인의 보양식이란
다행스러운 점은,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생활습관을 바로잡는다면 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믹스커피’라는 이름의 커피 향을 첨가한 설탕물을 매일 마시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과당, 설탕이 잔뜩 들어간 각종 음료수, 과일 주스는 지방간과 고지혈증의 주범이다. 배달음식 위주의 식습관을 개선하고 꾸준하게 운동하자. 금연과 절주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120세 시대가 눈앞에 도래했다. 실제 수명보다 ‘건강 수명’을 늘리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앞으로는 입에 맛있는 음식을 찾기보다, 칼로리와 혈당지수가 낮아, 인슐린 분비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 음식을 섭취하자.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잡곡 · 채소 · 해조류 · 견과류 · 과일 등을 골고루 챙겨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러한 음식들이 당신에게 활력을 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현대인의 진정한 ‘보양식’이다.



2021-05-01

정가영: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히포크라타의원의 원장이다. 국제기능의학회 · 대한가정의학회 · 대한임상암대사의학회의 정회원이며 환자들의 주체적인 건강 관리를 위한 건강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면역력을 처방합니다》, 역서로는 《암은 대사질환이다》 등이 있다. 홈페이지: hippocrata.com/ 블로그: blog.naver.com/dr_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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