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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8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의 천재성은 일찍이 빛을 발했다. 연주 시작 8개월 만에 런던 영재음악학교 메뉴인에 입학했고, 10살에 영국 런던의 로열페스티벌 홀에서 데뷔했다. 12살에 독주회를 열었으며 13살엔 영국의 거의 모든 음악상을 석권했다. 지휘자 정명훈은 그를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고 극찬하며 여섯 차례나 협연을 이어갔다. 한수진의 바이올린은 왜 그렇게도 특별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어떻게 수많은 ‘클알못(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감동시키는 걸까?
글 _ 배나영

생을 건져내는
음악의 위로



한수진이 꼽은 인생 최고의 순간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반짝이는 재능을 뒷받침하는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 나간 건 그의 인생에서 특별한 변곡점으로 꼽을만하다. 비에냐프스키 콩쿠르는 폴란드의 유명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헨리크 비에냐프스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겐 꿈의 콩쿠르로 불린다.
한수진이 비에냐프스키 콩쿠르를 나간 건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청소년 콩쿠르 접수 기간을 놓쳐서 경험 삼아 도전했는데 결선까지 올랐다. 그의 나이 15살이었다. 전 유럽에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콩쿠르 결선 무대에 서야 하는데, 주어진 곡을 한 번도 연습해본 적이 없었다. 기권할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래도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해보자며 짧은 연습 기간을 거쳐 결선 무대에 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세계의 쟁쟁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모두 제치고 2등을 거머쥐었다. 거기에 음악평론가상과 폴란드 국영방송 청취자상 등 7개의 부상을 동시에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세상에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커리어적으로 정말 감격스러운 일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 인생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콩쿠르에서 상을 탄 날보다 저에게 가장 소중한 인연, 안드레브스키 선생님을 만난 날을 꼽을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의 인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 명문 학교로 꼽히는 영국 ‘퍼셀학교’. 한수진은 그 곳에서 안드레브스키 선생님을 만났다. 안드레브스키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날, 한수진은 대부분의 선생님들로부터 첫 레슨을 받을 때처럼 연습곡을 준비해 갔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달랐다. 먼저 “넌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질문했다. 한수진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자신의 진한 감정을 담은 곡을 연주했다. 연주를 들은 선생님은 “너는 진짜 다이아몬드로구나!”라는 칭찬을 건넸다.




“안드레브스키 선생님 덕에 음악이 품고 있는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제 음악관을 만들어주셨죠.”
이외에도 한수진은 퍼셀학교의 ‘로즈마리 선생님’을 만난 일, 세계적인 악기 딜러 ‘찰스 비어’를 만난 일, 바이올린의 거장 ‘정경화 선생님’을 만난 일을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감사한 인연들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걸린다. 그동안 수많은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한수진은 인연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 담긴 그의 연주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종종 베토벤과 비견된다.
“양쪽 귀로 듣는 건 어떨까 궁금하지만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저는 종종 제가 내는 소리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듣거든요. 어쩌면 저에게 들리는 소리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저만의 유니크한 소리를 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제 연주가 더 특별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요.”
한수진이 연주를 시작하면 음악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어쩌면 그는 남들보다 조금 덜 듣는 만큼 더욱 감각적으로 소리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기분이 든다. ‘황홀한 기분’이라는 건 이럴 때 딱 맞는 표현이구나 싶다.


수술과 재활, 더욱 강렬해진 그의 연주

 

20대 중반, 한참 세계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어린 시절에 다친 턱관절이 점점 아파왔다. 통증이 심해서 연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수술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치료 기간이 1년 반 정도 걸린다고 해서 기뻤어요. 그동안 재충전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긍정적인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생각대로 회복되지 않았어요.”
예상치 못한 두 번의 수술과 재활을 하는 동안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연주자에게는 너무나 긴 공백기였다. 언제까지 치료를 연장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초조하고 불안했다. 자신의 연주 실황을 돌려보며 울 때도 많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고비가 있다고 말하지만 연주자가 연주를 하지 못할 때의 심정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건강한 마음으로 이 시기를 이겨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힘든 일들 또한 나에게 필요한 일이고, 나중에 돌이켜 생각했을 때 감사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을 때 이게 내 손가락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근육이 다 풀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진은 ‘공연을 하고 싶은 열망이 영혼 저 깊은 곳에서부터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 같았다’며 당시의 간절했던 마음을 표현했다. 수술한 턱은 불편했을 것이고, 굳어버린 손가락은 더욱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한수진은 고통을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오히려 그의 연주는 전보다 더 깊은 소리를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소리가 1부터 10이라면 한수진의 바이올린은 100에서 +100을 오가는 느낌이있다. 인생의 진폭을 크게 경험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울림이 담긴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수진을 ‘진짜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던 안드레브스키 선생의 말이 이해됐다. 한수진은 더욱 반짝이는 빛을 발하기 위해 오랜 시간 세심하게 깎아낸 다이아몬드다.




풍부한 감성으로 전하는 위로

한수진의 감성은 독보적이다. 클래식을 안 듣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들은 새삼 놀란다. 그의 바이올린은 저음부가 무척이나 깊고 풍부하다는 평을 받는다. 또 자신의 아픈 시간을 켜켜이 녹여내어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담겨있어서일까. 한수진의 유튜브에는 그의 음악을 듣고 감동받았다는 절절한 댓글이 유독 많이 달린다. 불안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음악을 듣고 편안해졌다는 댓글,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한강에 나갔다가 우연히 연주를 접하고 삶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댓글도 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그분들에게는 제 음악이 위로가 되고, 저는 댓글을 통해서 연주할 힘을 얻어요.”
한수진의 연주는 사람을 살리는 연주다. 삶에 불어닥친 아득한 절망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한 밤의 등대 같다.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가 삶의 회의를 느끼며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 한수진의 연주를 듣고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느꼈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제가 음악을 선택하긴 했지만, 제게 음악이 주어진 것(Gifted)이기도 해요.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크고 귀한 선물(Gift)이잖아요. 많은 분께 음악이라는 선물을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수진은 순간을 들려주고, 청중은 그 순간을 담아간다. 그는 순간이 빚어내는 위로의 힘을 알고 있다. 음악을 통해 진정한 위로와 행복을 전하고 싶다는 한수진, 그의 연주와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참 소중하다.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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