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한참 세계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어린 시절에 다친 턱관절이 점점 아파왔다. 통증이 심해서 연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수술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치료 기간이 1년 반 정도 걸린다고 해서 기뻤어요. 그동안 재충전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긍정적인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생각대로 회복되지 않았어요.”
예상치 못한 두 번의 수술과 재활을 하는 동안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연주자에게는 너무나 긴 공백기였다. 언제까지 치료를 연장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초조하고 불안했다. 자신의 연주 실황을 돌려보며 울 때도 많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고비가 있다고 말하지만 연주자가 연주를 하지 못할 때의 심정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건강한 마음으로 이 시기를 이겨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힘든 일들 또한 나에게 필요한 일이고, 나중에 돌이켜 생각했을 때 감사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을 때 이게 내 손가락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근육이 다 풀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진은 ‘공연을 하고 싶은 열망이 영혼 저 깊은 곳에서부터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 같았다’며 당시의 간절했던 마음을 표현했다. 수술한 턱은 불편했을 것이고, 굳어버린 손가락은 더욱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한수진은 고통을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오히려 그의 연주는 전보다 더 깊은 소리를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소리가 1부터 10이라면 한수진의 바이올린은 100에서 +100을 오가는 느낌이있다. 인생의 진폭을 크게 경험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울림이 담긴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수진을 ‘진짜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던 안드레브스키 선생의 말이 이해됐다. 한수진은 더욱 반짝이는 빛을 발하기 위해 오랜 시간 세심하게 깎아낸 다이아몬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