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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

이정모 관장은 일상에서 접하는 소소한 사건들을 과학과 접목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해 주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서울시립박물관 관장에 이어 최근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털보 관장’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유명하다. 과학에세이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과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 등으로 대중과 소통해 온 이정모 관장. 그를 만나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 물었다.

글 _ 배나영

과학의 언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보다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좋아서

저희 어머니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 아니었어요. 자식을 대학에 보내놓고 하루 종일 무엇을 배웠는지 얼마나 궁금하셨겠어요. 어머니가 다림질을 하면 옆에서 뒹굴 거리면서 DNA구조도 설명해 드리고, 배운 것들을 조곤조곤 설명해 드리곤 했죠.”

그렇게 과학을 설명하기를 1년 반, 어머니는 양복 한 벌을 해줄 테니 교회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라고 권하셨다. 9년 동안 야학 교사를 하면서 이 일이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실험실보다는 강의실이, 연구보다는 발표가 더 좋았다. 그래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더 잘하고, 좋아합니다. 과학자들은 너무 바쁜 데다가,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고, 논문으로 소통하죠. 논리적으로 완벽한 데이터와 수식으로 설명하지만 사람들은 그 언어에 익숙하지 않잖아요. 저는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연구하진 않지만 과학적인 주제를 사람들의 입말과 글말로 바꿔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죠.”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의 미래는?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보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학자들의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선다.

“어떤 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빈곤층으로 떨어지리라 예상하죠. 그건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회사들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만 물건을 생산한다면 누가 물건을 사겠어요.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소비할 돈을 가지고 있어야죠.”

이는 유럽에서 노동 시간을 줄이는 논의로 이어졌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동안 8시간 노동을 하고 100만 원을 번 사람들에게 노동 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 똑같이 100만 원을 주자는 뜻이다. 그러면 나중에는 2시간, 0시간을 일해도 같은 임금을 주게 된다. 기본소득 논의와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가 로봇세를 주장한다. 로봇을 이용해 줄어든 생산비만큼 세금을 걷어서 사회에 환원하고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안이다.

“근로시간을 줄이든, 기본소득을 주든, 로봇세를 걷든, 자본주의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동안 혼란스러울 겁니다. 아마 젊은 사람들이 더욱 어려워지겠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강력한 민주주의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 플랫폼에게 권력을 주기만 하고 통제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아마존이나 구글의 지배를 받게 될 겁니다.”

 

 



 

사이언스 리터러시가 필요한 시대

국가는 복지와 기본소득을 고민하고, 기업은 일자리와 로봇세를 고민하는 인공지능 시대. 개인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언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글을 읽으면서 지식과 정보를 이해하는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만으로도 행복했어요. 이제는 사이언스 리터러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모든 기계의 작동 원리는 스물 몇 가지 밖에 안됩니다. 이 세상 모든 기계가 그 원리로 작동하고 있어요. 원리를 들여다보고 기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듯이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싶다면 과학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두려움을 줄여나가야죠. 개인이 해야 할 일은 그겁니다.”

이정모 관장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코로나19에 대한 진단 키트를 금방 만들 수 있었던 이유라든가, 무증상 감염은 없으리라 추측하는 이유 등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실을 이해하면 불안감이 덜하다고 말한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나 초미세먼지를 대할 때도 과학적인 수치를 중요시한다면 그리 불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꼭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정모 관장은 자유롭고 유쾌하게 살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태도가 필수라고 말한다.
 




미래 시대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

이정모 관장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로 창의성, 소통능력, 회복탄력성을 꼽았다.

“창의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아요.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단 암기를 해야 합니다(웃음).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어요. 기계의 원리는 몇 가지 안 되지만 우리는 그 원리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기계를 만들어내잖아요. 머릿속에 이미 외워둔 A, B, C, D가 있어야 A와 B를 엮어보고, B와 D를 조합해서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죠.”

이정모 관장은 뚱딴지같은 생각은 그저 뚱딴지일 뿐 창의성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일단 외울 건 외워야 한다. 세상이 바뀐다고 해서 교육의 내용이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통역을 해주면 영어 공부를 안 해도 될까요? 언어를 몰라도 여행하고 생활하는 데 문제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서로 된 정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정보를 얻어야 할 때도 있어요. 한국어로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것들, 영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들도 있죠. 삶을 풍성하게 하는 언어들이 필요합니다.”

이정모 관장은 수학도, 물리도, 영어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암기도 해야 한단다. 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은 회복탄력성이다. 아이에게는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학 논문에는 실패한 실험 결과도 실어줍니다. ‘이렇게 하니까 안되던데?’ 이건 굉장히 중요한 데이터거든요. 실패해서 좌절의 눈물을 쏟아내고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태도, 이게 바로 회복탄력성입니다. 한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도전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실패를 경험했을 때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에요.”

부모 세대가 준비해야 할 것
이정모 관장은 인공지능 시대에 부모가 아이에게 특정 직업을 추천하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모 세대의 역할은 따로 있단다.

“제가 보기에 부모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직업 세계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겁니다. 아이들이 당장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살아나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사회 보장 제도 같은 걸 만들어야 해요.”

지금의 어린 세대는 인류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살아야 한다. 에너지와 자원과 기술 사이의 간극을 살피고 균형을 맞춰야 하는 시대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도전을 통해 새롭게 자신의 영역을 만들지 못하면 더욱 도태될지도 모른다.

“해외에서는 스타트업을 하다가 실패하면 기업에서 서로 모셔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실패하면 경제사범이 되죠. 도전하다가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해요.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내 아이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정모 관장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가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우리 세대가 조금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그의 통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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