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움츠러들기 쉬워 여행하기 쉽지 않은 계절이지만 오히려 겨울에 매력을 발산하는 여행지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최북단 섬 북해도입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겨울 풍경으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고, 중심도시 삿포로에서는 매년 세계 최대 규모의 눈 축제가 열립니다.
글 _ 강이석
신치토세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들어가 눈의 도시 삿포로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차갑지만 상쾌한 겨울의 공기가 맞이해 줍니다. 양옆으로 1미터 넘게 쌓인 눈 벽을 미로처럼 지나 숙소로 향하고 있노라면 도시 곳곳을 감싸는 하얀빛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향하는 듯합니다.
북해도는 원래 일본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누족의 터전이었던 북해도는 아이누의 땅이라는 뜻의 ‘에조치’로 불렸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정착하면서 북해도는 비로소 일본 영토에 편입됩니다. 그래서 북해도의 많은 지명들은 아이누어에서 유래하는 것이 많습니다. 삿포로 역시 ‘메마른 강바닥’을 뜻하는 아이누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눈의 도시 삿포로를 더욱 동화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주는 녹색 트램을 타고 도심으로 향합니다. 번화가 스스키노 사거리에는 삿포로의 랜드마크 니카(Nikka) 간판이 있습니다. 니카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타케츠루 마사타카가 스코틀랜드 유학 후 북해도에 설립한 일본 최초의 위스키 회사입니다. 니카는 일본 위스키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산토리 설립에 이바지하였고, 이후 아사히 맥주에 편입되면서 일본 주류 시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삿포로 하면 위스키보다 맥주가 먼저 떠오릅니다. 삿포로 맥주는 1876년 일본 최초로 설립된 개척사 맥주 양조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일본 내 점유율은 4위에 그치지만, 이곳 북해도에서만큼은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특히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삿포로 클래식이 가장 유명합니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서는 과거에 맥주를 제조하던 커다란 담금 솥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맥주 디자인 라벨 및 광고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결정적인 매력은 바로 갓 나온 신선한 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천 엔을 내면 블랙 라벨, 삿포로 클래식, 개척사 맥주 등 3종류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데요. 특히 개척사 맥주(Kaitakushi Beer)는 최초 맥주장을 운영하던 초기의 제조법을 재현한 맥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입니다.
삿포로에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칭기즈칸을 추천합니다. 칭기즈칸은 양고기를 불판에 구워 먹는 요리인데 음식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양고기를 대표하는 나라이자 인물이 몽골의 칭기즈칸이라는 설이 유력하고, 고기를 굽는 불판의 모양이 칭기즈칸의 투구를 닮아서라는 설도 있습니다.
북해도는 일본의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식량 자급률이 무려 200%에 달할 정도로 농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오죽하면 ‘일본의 부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니까요. 이는 북해도 개척 역사와 함께한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19세기 후반, 아무것도 없던 춥고 황량한 동토의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야망이 필수적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문장 전문으로 삿포로 여행을 마칩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 돈이나 이기심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추구하는 야망을.”
2025-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