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언덕엔 작은 ‘힐 타운(Hill Town)’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산이 많은 지형에서 외적의 침입과 내전으로부터 방어적 위치를 구축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들이다. 기원전부터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모습이 만들어진 시기는 중세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다.
힐 타운들은 멀리서 보면 언덕 위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성같이 보인다. 참 드라마틱한 경관이다. 특이한 풍경인데도 눈에 거슬리거나 이질적 요소 없이 잘 짜여있다. 힐 타운들은 마을의 중세적 분위기를 보존하기 위해 건물의 높이, 도로의 폭과 돌출, 상업건물의 종류, 건축 재료 및 개구부의 크기와 모양 등 까다로운 건축법규를 적용한다. 마을 외곽에만 차량 주차가 가능하고 마을 내부로는 차량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덕분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차량이 없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감상할 수 있다. 마을을 아름답게 보존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주민 스스로가 긍지를 갖게 만드는 마음가짐의 발로다.
대부분의 힐 타운들은 체계적인 도시계획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불규칙하게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환경 요소의 조화가 절묘하다. 길과 건물의 색채, 질감, 밀도, 막힌 벽과 열린 공간의 대비가 마치 수백 점의 빼어난 조각 작품을 연속으로 감상하는 것 같다.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 저절로 형성되는 공간의 연출은 시점마다 변한다.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캄포(Campo, 광장)나 언덕 아래의 풍경은 덤이다. 여기에는 자연환경과 인간의 생활, 그리고 건물 형태 간의 친밀한 상호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지적이고 양식적인 압박에서 탈피한 자유로운 구성, 거주자의 삶과 조경에 꼭 맞게 짜인 형태들, 이탈리아의 힐 타운은 실로 아름다운 마을의 모델을 보여준다.영화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두 마을이 있다. 바로 토스카나 지방의 ‘코르토나(Cortona)’와 ‘아레초(Arezzo)’다. 각각 ‘다이앤 레인’ 주연의 ‘투스카니의 태양(Under the Tuscan Sun)’과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의 배경이 되면서 알려졌다. 이 두 영화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시에나, 피사 등의 도시나,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 등에 비해 보잘것없고 소박하던 두 마을을 일약 대표 관광지로 만들었다. 또한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 불리는 버내큘러 건축*에 관한 관심도 불러일으켰다.
*버내큘러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
Vernacular는 토착어, 토착적인이라는 뜻이다.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지역 양식을 뜻하기도 한다. 일정 지역의 지역적, 풍토적, 기후적, 관습적, 환경적인 조건을 기반으로 생기는 건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