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Road

경주 황리단길

글 _ 장홍석 / 사진 _ 장서우

여전히 아름다운
경주의 어제와 오늘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 같은 곳으로, 예전부터 아이들의 수학여행지로 각광받았다.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 딱딱하고 예스러운 도시라는 선입견이 존재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경주의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 그야말로 힙한 도시가 됐다(힙하다 :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라는 뜻의 신조어). 그 일등 공신은 바로 황리단길. 대릉원 옆 좁은 골목길에 최근 2~3년 전부터 카페, 음식점, 액세서리 숍 등이 들어섰고, 독특한 인테리어와 특색 있는 음식들이 SNS 상에서 화제가 됐다. 그리고 ‘~리단길’이라는 유행에 맞춰 황남동의 ‘황’을 따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
황리단길은 평일 낮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20~30대 젊은이들이 너나 할 거 없이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서 있다. 황리단길의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가보자. 프랜차이즈 가게들의 뻔한 간판대신 개성 넘치는 간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와 지붕의 한옥을 개조한 독특한 외관은 여기가 카페인지 미술관인지 헷갈리게 한다. 굳이 가게 내부로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가게의 외관을 둘러보며 한가로이 거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카페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유리창에 비친 커다란 능이 눈에 들어왔다. 황리단길 바로 옆에는 천마총이 위치한 대릉원이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능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오션 뷰, 리버 뷰는 많이 들어봤는데 능 뷰는 낯설다. 남의 무덤을 바라보며 즐기는 여유라니. 이상할 것 같지만, 막상 실제로 즐겨보니 썩 나쁘지 않다. 가게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과 푸른빛 능, 고소한 커피의 조합이 꽤나 잘 어울린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던 대릉원에도 슬쩍 발을 디뎌보자. 대릉원은 입구에서 표를 구매해야 입장할 수 있다. 경주에 널린 게 능인데 굳이 돈을 내고 들어갈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금세 생각이 바뀐다. 방금 전 황리단길에서 느꼈던 ‘도심의 힙함’에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 차분해진다.

능이 지닌 매력은 직접 보지 않고선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키듯 유연하고 거대한 곡선이 매력포인트다. 능의 곡선을 따라 나눠진 하늘과 땅에 눈길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능을 따라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로를 걸어보자. 나도 모르게 뒷짐을 쥐고 발걸음을 늦추게 된다.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던 시간도 잠시 여유를 되찾는 듯하다. 산책로의 반 정도를 거닐었을 즈음, 능과 능 사이에 서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대릉원의 계절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1년 365일 어느 때나 온몸으로 계절을 알린다. 그 노력이 가상해서인지, 유독 많은 사람들이 사진 속 주인공으로 이 나무를 선택한다. 대릉원에 간다면, 놓치지 말고 감상해야 할 포인트다.

 

 

 

양동마을은 포항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낄 만큼 경주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지닌 양반 집성촌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살랑대는 봄바람을 따라, 마을을 둘러보자. 그 옛날 교과서에서나 봤을 법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초가집의 지붕, 일렬종대로 늘어선 장독, 그 옛날엔 일상이었던 모습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마을 초입에선 언덕으로 보이는 집들이 끝인 줄 알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생각보다 많은 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붕의 초가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든다. ‘눈이 오면? 비가 오면? 이 집들이 온전할까?’ 이미 내 나이보다 훨씬 긴 세월을 견뎌온 집들인데 내가 뭘 걱정하나 싶다. 새삼 선조들의 능력이 놀랍고 신기하다.
양동마을을 둘러볼 때는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에게 특별한 양동마을의 모습이 아직도 일상인 주민들이 있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의를 갖추고 관람하자.

 

 

 

경주의 밤은 오랜 시간 동안 ‘동궁과 월지(안압지)’가 밝혔다. 동궁과 월지는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그 일대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동궁과 월지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있으니, 바로 월정교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교량인 월정교는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후, 고증을 거쳐 지난해 4월 복원됐다.
사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의 월정교는 특별한 매력이 없었다. 그냥 경주스러운 느낌의 다리라고나 할까. 가까이서 바라보니 생각보다 웅장한 느낌이고, 밑으로 흐르는 하천이 시원시원하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어스름이 찾아오자, 월정교는 이전의 생각이 미안해질만큼 멋스러움을 뽐냈다. 특히 완전히 컴컴해지기 직전, 그 찰나의 월정교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월정교를 비추던 조명이 하천에 비쳐, 또 하나의 월정교를 그려냈다.
우리는 보통 어두운 곳에서 밝은 것을 보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곤 그게 곧 야경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월정교 위에서 바라본 경주의 모습은 그 동안 알고 있던 야경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간혹 서있는 가로등의 불빛을 제외하면 고요하고, 어둡고, 잔잔하다.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모를 만큼 딱히 보이는 것도 없는데,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어둠이 주는 평온함 덕분에 눈과 마음이 쉬어가는 곳, 월정교의 야경은 ‘동궁과 월지’와 충분히 견줄만했다.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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