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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한 흰 눈을 따라 월정사로 향하는 천년의 숲

글/사진 _ 배나영(여행작가)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고개를 들면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들이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뽐내며 푸른 하늘을 지고 섰다. 뽀드득뽀드득 발밑에서 들려오는 눈 밟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싱그러운 공기에 가슴 속까지 상쾌하다. 오대산의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역시 겨울에 걸어야 제맛이다.
오대산의 전나무 숲길은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수목원과 더불어 한국 3대 전나무 숲길로 유명하다. 2011년 열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평균 수령 80년이 넘고, 최고 수령 300년에 달하는 전나무 1700여 그루가 길 양쪽에 버티고 섰다. 숲길 옆에는 얼어붙은 오대천 위로 눈이 소복하게 쌓여 반짝인다.
오대산 전나무 숲길은 최근에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주인공인 도깨비(공유 분)는 흰 눈이 쌓인 전나무 숲길에서 연인(김고은 분)에게 자신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검이 뽑히면 자신이 죽는 줄 알면서도 말이다. 두 연인을 둘러싼 흰 눈밭과 빽빽한 초록 전나무 숲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더랬다.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의 일주문에서부터 금강교까지 이어진다. 원래는 다른 강원도의 숲처럼 소나무가 울창했던 이 길이 전나무 숲길이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고려 말, 월정사의 스님이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있을 때 소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후두둑 그릇에 떨어졌다. 그때 홀연히 산신령이 나타나서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꾸짖더니 전나무 아홉 그루에게 절을 지키는 임무를 맡겼다고 한다. 그 후로 월정사 주변은 소나무 대신 전나무가 에워쌌다. 무려 천 년의 세월 동안 월정사를 지킨 이 전나무 숲을 ‘천년의 숲’이라 부른다.
천년의 숲은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이어진다. 오랫동안 스님과 신자들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던 9km의 숲길을 선재길이라 부른다.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 30분 정도,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을 걸으면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선재길까지 가기가 부담스럽다면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나무 숲길을 지나 일주문까지 걸어가보자. 일주문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숲길을 따라 다시 월정사까지 약 2km의 짧은 순환산책로를 돌아볼 수 있다. 고요한 가운데 후드득 새가 날아가는 소리, 졸졸졸 얼음 밑을 흐르는 개울물소리가 맑은 공기에 실려 온다.
다섯 봉우리가 마치 연꽃처럼 벌어졌다는 오대산 줄기 아래 따뜻한 남쪽을 향한 월정사가 자리했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함께 무척 신성한 산으로 여겨진 명산이다. 옛사람들이 ‘삼재가 들지 않는 명당’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고려시대부터 전란의 피해 없이 잘 보존되어 오던 월정사는 한국전쟁 때 불타올랐다. 아쉽게도 영산전, 진영각 등 17채의 건물이 다 타버리고 문화적, 예술적으로 크게 가치를 평가받던 범종도 흔적 없이 녹아버렸다. 지금의 건물들은 그 후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고, 국보 제 48호인 팔각구층석탑만이 고려 초기에 지어진 사찰의 기억을 담고 적광전 앞에 꿋꿋하게 서 있다.
 


  

월정사에서 한 시간 정도 동쪽으로 달려가면 커피의 도시로 유명한 강릉이다. 겨울이니 뜨끈한 감자옹심이를 맛보고 여행을 시작해 볼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을 둘러보며 단아한 한옥과 멋스러운 소나무를 감상하자. 오죽헌 앞의 널따란 광장 바닥에는 5천 원 권에 새겨진 오죽헌의 풍경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면 오죽헌의 근사한 모습을 남길 수 있다. 안목해변의 카페거리는 언제 가도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통유리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커피를 한 잔 받아들고 바다를 바라보는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면 겨울 바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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