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Road

영화의 도시, 전라북도 군산

글 _ 장홍석 / 사진 _ 김흥규

시간을 걷는 도시,
군산의 그때 그 순간


 

  

〈8월의 크리스마스〉 〈타짜〉 〈남자가 사랑할 때〉 〈변호인〉…. 전라북도 군산은 수많은 명작(名作)의 배경이 됐다. 도시 곳곳이 한 폭의 명화(名畵)처럼 아름다워서일까. 이 작은 도시에서 이렇게나 많은 영화를 찍었나 싶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영화 촬영지가 가득하다. 영화나 음악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봤던 영화를 훗날 다시 봤을 때, 영화와 함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게 바로 그 예다. 누군가에게 더없이 특별한 그때 그 순간을 좀 더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영화와 음악이 지닌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도시’ 군산을 거닐다 보면, 시간을 걷는 듯하다.
군산과 영화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켜준 대표작은 〈8월의 크리스마스〉이다. 특히 초원사진관은 영화의 주 촬영지로 사용되고, 전국 3대 빵집으로 불리는 이성당이 근처에 자리잡아 군산의 명소가 됐다. 세월이 흘러 영화 속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초원사진관의 시간은 8월의 크리스마스이다. 사진관 한 쪽 벽면엔 영화 속 명장면이 가득하고,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직접 사진을 찍어볼 수도 있다. 내부는 5분이면 다 둘러볼 정도로 좁은 편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설레는 마음으로 들러보기 좋다.
초원사진관 바로 옆에는 실제 영화에 등장했던 차량이 전시되어 있다. 맞은편 벽면에는 예쁜 벽화도 그려져 있어 사진을 남기기 좋다. 물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포토 스팟은 초원사진관 입구이다. 예스러운 간판 위로 사람들의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진다. ‘사진을 찍는 사진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라니.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초원사진관에서만큼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초원사진관이 단순한 사진관, 영화 촬영지를 넘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시간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초원사진관에서 5분정도 걸어가면 영화 〈타짜〉 속 고니(조승우)와 평경장(백윤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유명한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건축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배경이 됐다.〈사진1, 2〉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크고 작은 나무로 가득 찬 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원 한 가운데 서서 바라본 일본식 가옥의 자태도 인상적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독특한 모양의 2층 집, 높이 솟은 나무, 왠지 지붕 위로 사무라이가 날라올 것 같은 묘한 느낌이다. 초원사진관처럼 신흥동 일본식 가옥도 화려하거나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특별함을 찾기 보단, 잔잔한 휴식을 찾아 잠시 둘러보기 좋다.
군산에는 중식당이 많다. 그중 빈해원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식당으로 1950년대에 문을 열었다.〈사진3〉 군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로 인정받아 지난 8월 문화재로 등록됐다. 음식점 내부를 보며 감탄하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허름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중국 현지에 와있는 듯 화려하다. 독특한 형태의 테이블과 높은 천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손님들로 가득 찬 1층에서 벗어나 2층도 구경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로 자주 사용돼서 그런지, 어깨에 힘들어간 형님들의 식사 장소로 한번쯤은 본 듯한 느낌이다. 군산의 별미 중 하나인 물짜장, 해산물이 가득한 짬뽕, 바삭한 탕수육이 주 메뉴다. 멋스러운 내관만큼 음식 맛도 일품이다. 인근의 다른 중국집과 달리 내부가 넓어, 대기시간 없이 식사할 수 있다. 

 

 


 

두둑하게 배를 채웠다면 바로 옆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해보자.〈사진4, 5〉 다양한 전시공간 중, 근대생활관은 1930년대 군산에 존재했던 11채의 건물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어르신들 사이로, 신기한 듯 바라보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같은 시간을 놓고 누군가에겐 추억을, 누군가에겐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장소인 듯하다. 박물관 인근에는 산책로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어 한가로이 거닐기 좋다. 바다내음을 만끽하며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초원사진관을 시작으로 군산근대역사박물관까지 모두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인 만큼, 하루 여행코스로 제격이다.
영화의 90%를 군산에서 촬영한 〈남자가 사랑할 때〉 속 태일(황정민)과 호정(한혜진)이 거닐던 철길도 직접 걸어볼 수 있다.〈사진6, 7〉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대신해철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철길을 사이에 두고 1km남짓한 구간에 추억의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옛 교복을 입어보거나 어린 시절 즐겨먹었던 간식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굳이 맛이 중요할까. 영화나 음악만큼이나 음식도 그때 그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아, 역시 군산은 시간을 걷는 여행지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군산은 영화만큼이나 철새의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겨울철새 도래지인 군산의 모습은 금강 철새조망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군산을 찾는 철새들을 소개받으며 조망대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전망대에 다다른다. 전망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망원경을 움직이자 금강의 물줄기 위로 한가로이 떠있는 철새의 모습이 보인다. 1~2월 사이엔 군산 철새들의 멋진 군무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꼭 들러보는 게 좋겠다.
금강철새조망대 앞으로는 길게 늘어선 금강과 갈대밭을 볼 수 있다. 갈대밭 사이를 거닐다 보면, 갈대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금강과 하늘이 어우러져 잠시 쉬어가게 만든다. 군산이 곧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 바쁜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 지난 시간을 찾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많은 사람들이 군산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군산의 그때 그 순간은 참 매력적이다.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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