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Road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글 · 사진 _ 배나영(여행작가)

섬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육지와 동떨어졌던 섬들이 다리로 이어지면서 오래도록 품어 왔던 옛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특별한 공간에 흐르는 느릿한 이야기를 듣는다.
오래된 공간이 새롭게 변신하듯 옛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이다.

강화도에는 옛 방직 공장이었던 건물이 길게 뻗어 있다. 공장의 심볼마크에서나 보던 삼각형 지붕이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았다. 공장 같은 카페 건물로 들어서니 지금이라도 붕붕거리며 움직일 것 같은 버스 안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고, 빨간 공중전화 박스 안에는 수화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근방엔 60여 곳의 공장이 번성했다. 주로 기저귀나 이불 안감으로 쓰던 소창이나 인감을 생산했다. 대구, 수원과 더불어 전국 3대 면직물 생산지로 꼽히며 승승장구했지만 대구의 현대적인 의류 산업이 번창하면서 이곳의 면직물 산업은 쇠퇴했다. 단무지 공장, 젓갈 공장으로 쓰이다 버려진 공장이 카페로 변신했다. 내부 공간을 다양한 그림과 조각품으로 채웠다. 옛날식 화장실의 바닥을 막고 칸마다 그림을 넣어두는가 하면, 1969년의 달력을 벽에 붙여 두고, 그 시대의 영화 포스터를 곳곳에 놓아두었다.






 

방직 공장이었던 공간의 의미도 되살렸다. 방직 기계가 있던 작업대를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활용하고, 재봉틀이 올려진 테이블도 그대로 사용한다. 카페인지 미술관인지 박물관인지 모를만큼 다채로운 공간은 눈길 닿는 모든 곳이 근사한 포토존이 됐다. 옛 이발소 의자에 앉은 어르신들이 추억을 나누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방직 공장의 역사, 그리고 그 시절의 향수와 카페의 추억이 버무려지는 곳. 커피 한 모금에 추억 하나를 떠올리며 오래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교동도의 대룡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60년대를 재현한 영화세트장에 온 느낌이다. 교동도는 강화도와 이어지는 다리가 놓인 지금까지도 검문을 통과해야 입도할 수 있다. 마을 골목이 변함없이 그대로인 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 시장 어귀에는 작은 카페들도 생겨났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여전히 직접 짠 참기름과 직접 담근 고추장, 교동도에서 농사지은 각종 작물을 파는 상점들이 옛 모습 그대로다. 옛 벽지와 흰 타일이 그대로 남아있는 교동 이발관, 이제는 멈춰버린 먼지 쌓인 시계들이 가득한 황세환 시계방, 검정 고무줄이 주렁주렁 걸린 잡화점이 향수를 자극한다. 개구쟁이가 그려진 벽화들도 재미있고, 역대 대통령 선거 벽보들, 브나로드 운동 포스터도 흥미롭다. 모둠전에 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을 배불리 먹고, 교동 다방에서 쌍화차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한다. 부지런히 현재를 살아가는 상인들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모습에서 생활의 활력을 얻어간다.
대룡시장 근처에 교동향교와 교동읍성이 있으니 온 김에 들러보자. 공자 앞에서 머리를 낮추라며 낮게 지어진 대성전으로 들어서면 공자의 초상을 볼 수 있다. 교동읍성의 성벽은 남문인 유량루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바닷길이 험해 접근이 어렵던 교동도의 읍성 부근에 연산군, 광해군, 안평대군 등 수많은 이들이 유배당했다. 문루를 복원했으나 무너져 내린 성벽만큼 쓸쓸하다.

   

 


 

서울과 가까운 바다이면서도 석모도의 바다는 호젓하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해지기 전에 섬을 빠져 나오는 배를 타기 바빴지만, 이제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여유를 부린다. 하염없이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따끈하게 손을 녹일 차 한 잔만 있으면 오래도록 바다와 마주할 수 있다.
석양은 바다에서 봐야 제맛이다. 서해의 낭만은 붉게 물드는 석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르스름하던 하늘이 서서히 따뜻한 색으로 변하는 동안 짧았던 한 해를 돌아본다. 섭섭한 일도, 원망스러웠던 일도 훌훌 털어버린다. 부끄러운 기억으로 붉어진 마음도 바다로 던져버린다. 여행을 다닐 만큼 건강함에 감사하며 희망의 불씨를 마음에 품고 한 해를 고요하게 마무리한다.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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