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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인간의 판단, 의사 결정, 문제 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한다. 〈어쩌다 어른〉 〈세바시〉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과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의 책을 통해 심리학의 지혜를 알리는 중이다. 그에게 개인과 조직이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글 _ 배나영

창의적인 개인과
조직이 되려면
이타성이 필요합니다








창의성은 '능력'보다 '상황'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의적인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상황’이 있어요.”
김경일 교수는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보다 어떤 ‘상황’이냐가 더 큰 차이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창의적인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인 상황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위치종속적이고 환경종속적이기 때문이다.
“저는 앉아서 논문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일어서서 읽어요. 풍경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무가 보이고 멀리 떨어지면 숲이 보이듯이 어떤 자세로 글을 읽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거든요.”
김경일 교수는 같은 글을 앉아서 읽는지 서서 읽는지, 모니터가 가로인지 세로인지에 따라서도 창의적 관점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세로로 돌릴 수 있는 모니터를 사용한다. 글을 읽을 때 모니터를 세로로 돌리면 글씨가 작아지면서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게 된다고 했다.
“혹시 창의성을 타고난 능력이라고 확신하더라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해요. 그래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선천적인 능력을 탓하며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김경일 교수가 아프게 꼬집는다. 그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고, 창의성을 기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타적인 사람이 더욱 창의적이다

“수많은 기업이 제게 질문합니다. 창의성이 있는 사람을 채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저는 이타적인 사람이 창의성도 높은 경우가 많다고 말해요.”
김경일 교수는 자신과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식으로 답하는지에 따라 이타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전교 1등을 하는 아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아이가 특정 문제를 설명할 때, 전교 2등인 아이에겐 설명하기가 쉽다. 둘은 어느 정도 실력도 비슷하고 이해력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반면 전교 꼴찌인 친구가 질문을 하면 쉽게 설명하기가 만만치 않다. 한데, 이타성을 가진 아이라면 그 과정도 즐기며 설명할 것이다. 이타적인 사람은 남을 위해 문제의 해답을 찾고 설명하는 일을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타성을 즉시적 만족감의 지연능력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아이가 원하는 게 있을 때 그 즉시 해결해주는 건 이타성을 0으로 만드는 일인거죠(웃음). 부모가 하던 일을 마치고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해요.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까 마저 끝내고 간식을 줄게’라든가, ‘월급날이 일주일 후니까 용돈은 그때 줄게’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지연 능력을 배울 수 있어요.”
지연 능력을 갖춘 아이는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가 질문을 했을 때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친구가 따라오는 과정을 기다리고 도울 수 있는 아이가 된다. 이타성, 그리고 창의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남의 질문을 거부하지 않고 답을 설명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 또한 몰랐던 부분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같은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타적인 사람이 더 창의적인 겁니다. 기초 사고능력이 좋은 것만으로는 절대로 창의성을 갖출 수 없어요.”



 

 


 
  

창의적인 조직의 구성


그렇다면 창의적인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창의적인 개인이 모여야만 창의적인 조직이 되는 걸까?
“창의적인 걸 만드는 사람과 창의적인 걸 알아보는 사람은 달라요. 아이폰을 만들어 낸 건 사실 잡스가 아니라 워즈니악이었죠. 잡스는 워즈니악이 만든 물건을 알아본 사람이고요.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해요.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걸 알아보는 사람.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어떤 능력이 중요할까요?”
김경일 교수는 창의적 능력과 리더십은 연관이 없다고 말한다.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겐 성과에 따라 대우해주되, 리더의 역할보단 계속해서 창의적인 일을 맡기는 편이 좋다. 반대로 창의성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겐 조직에서 창의적 인재가 실력을 잘 발휘하도록 돕는 리더의 자리를 맡겨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조직’이 완성된다.
“사자는 500만 년 전의 화석도 존재해요. 그만큼 오랫동안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죠. 변화하는 환경에서 역동적으로 대응했어요. 뛰어난 사자가 왕이 되는 게 아니라 잡은 사냥감을 나눌 줄 아는 사자가 왕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분배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분배를 잘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그 조직은 창의적인 조직으로 성장합니다.”

 






'훈수'를 주고받는 조직원들이 많아야 한다

 

김경일 교수는 창의적인 조직이 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으로 조직원들 간의 ‘훈수’를 꼽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문제를 완전히 다른 상황과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훈수를 받는 것이다.
“훈수는 누가 두겠어요? 팀의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조언하는 건 훈수가 아닙니다. 그건 지시이자 교육이에요. 훈수는 A팀의 박 과장이 B팀의 김 과장에게 ‘이런 건 어때?’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거죠.”
한국인은 ‘나’가 아니라 ‘우리’를 내세우는 관계주의 문화에 익숙하다. 김경일 교수는 바로 ‘우리’의 관계를 기반으로 상황을 다르게 보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를 ‘훈수’라고 말한다.
“조직의 리더라면, 조직원들끼리 훈수를 주고받게끔 만들어야 해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회사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말이에요. 흔히들 서양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일본을 수직적인 관계로 보죠. 수직과 수평이 아니라, 대각선 관계가 많은 조직이 창조적으로 잘 굴러갑니다.”
김경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창의적인 사람은 이타성을 발휘해 자신의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사람이다. 또한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선 분배를 잘하는 리더가 있어야 하고, 서로 훈수를 둘 수 있도록 조직원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결국, 창의성이 뛰어나려면 ‘우리’를 위하는 마음, 서로를 배려하는 이타성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그 말이 이해된다. “이타적인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이제 그 뜻을 알 것 같다.

 

20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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