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Road

양양 & 속초

글 _ 장홍석 / 사진 _ 김흥규

하루, 또 다른 하루
그 틈의 ‘바람’을 찾아




매일 아침 집을 나설 시간이면 거실에서 〈인간극장〉의 BGM이 들려온다. 누구나 알 법한 이 음악이 나에겐 ‘빨리 출근해!’라고 독촉하는 알람이기도 하다. 뭐 때문인지 BGM이 울리고 한참후에야 집을 나서던 날이었다. 그날 방송의 주인공은 50대 택배기사. 땀을 뻘뻘 흘리는 그에게 ‘이렇게 더운 날엔 힘들지 않냐’는 질문이 주어졌다. 그러자 “저는 행복한데요? 땀을 흘린 덕에 지금 이 바람이 더 시원한 거잖아요”라며 활짝 웃는 주인공. 그 소리에 신발을 신다가 잠시 TV를 바라봤다. 물론 화면에 떠있는 시간을 확인하곤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지만.
땀 흘려 고된 노동을 마친 사람, 열심히 일한 사람에겐 잠깐의 바람도 더 시원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분명 같은 바람인데도 이전에 맞은 바람보다 훨씬 상쾌하다. 어느덧 2019년의 절반을 넘긴 8월, 열심히 달려온 우리도 한층 시원해진 바람을 만끽하며 잠시 쉬어갈 때다. 이번 여름에는 양양과 속초의 바람 속에서 땀방울과 피로를 훨훨 날려보자.




 

최근 몇 년 사이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서핑바람이 불었다. 특히 양양 중광정해변에 위치한 서핑 전용 해변 ‘서피비치’는 시원한 파도를 찾는 서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피비치는 해수욕장치고는 꽤 조용한 곳에 자리잡았다. 근처에 카페, 음식점도 몇 개 없다. ‘정말 서핑만을 위한 해변인가’ 아쉬운 생각을 하며 뜨거운 모래사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국적인 분위기에 눈동자가 커진다. 에메랄드빛 바다 앞으로 해먹과 파라솔이 펼쳐져 있고, 시원한 맥주와 칵테일, 커피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비치 바(Beach Bar)가 서퍼들을 맞이한다. 초보 서퍼들을 위한 강습이 펼쳐지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패들보트도 체험할 수 있다.
이미 SNS에서 ‘양양의 핫플(Hot place)’로 유명세를 타서인지 여기저기서 쉴새 없이 플래시가 터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꼭 서핑을 즐기지 않아도 좋다. 해먹에 누워 한 손에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들고 사진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분위기에 흠뻑 취한다. 단, 어찌 됐든 이곳은 서핑 전용 해변이다. 안전한 서핑을 위해 해변에서 튜브를 이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하기엔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사랑하는 연인 혹은 친구와 함께오면 좋겠다.
 


 

  

 
서피비치에서 차로 3분거리엔 하조대 전망대가 위치해 있다. 왠지 높은 곳에 있을 법한 ‘전망대’라는 명칭이 어색할 만큼, 차를 세우고 전망대에 오르기까지 딱 30초면 충분하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넘긴다. 전망대 밑의 둘레길과 해변, 바위, 나무가 어우러져 청량감이 온몸에 가득 퍼진다. 밤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잠시 바닷물에 몸을 담근 듯, 푸른 바다 위로 햇살이 바스러져 반짝거린다. 여덟 발자국정도면 끝나긴 하지만 나름 스카이워크도 있다. 전망대 둘레로는 산책로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양양의 푸른 바다를 즐겼다면, 이번엔 속초로 향해보자. 설악산국립공원에서는 그 옛날 권(權), 김(金) 두 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난리를 피했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해발 700m 권금성까지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다.
무더운 날씨에 ‘케이블카는 얼마나 찜통일까’ 걱정하지만, 의외로 케이블카 안은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하다. 상쾌한 산바람에 감탄하다 보면 이내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다. 발 밑으로 울창한 나무숲이 펼쳐지고, 저 멀리 신흥사의 거대한 불상이 우리를 반긴다. 시원함을 시선으로 느낄 수 있다면 딱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케이블카 정상에 도착해 약 10분 정도 산을 오른다. 초반에는 나무의 그늘 덕에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권금성에 도착하면 뜨거운 태양과 맞서야 한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흘러 내 모습은 가관이나, 그곳에서 바라본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동서남북 어디로 눈을 돌려도 거대한 자연이 마주한다. 단, 권금성에 다다른 후엔 바위 산을 올라야 한다. 잘못 발을 헛디뎠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어 아이 혹은 어르신과 함께 한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면,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하는 걸 좋아한다. 낯선 장소가 선사하는 평범한 일상의 설렘은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청초호수공원은 산책 나온 속초 시민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다. 호수치고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청초호를 따라 한가로이 거닐기 좋다. 특히 어스름이 찾아오면, 붉은 하늘과 나무가 호수 위로 비쳐 묘한 색감을 만들어낸다.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정자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여유를 즐기고, 건너편 엑스포전망대는 화려한 불빛으로 이들을 비춘다.
가까운 거리에 속초중앙시장, 아바이순대타운이 있어 맛있는 음식과 함께 여행의 하루를 정리하기도 좋다. 그래서인지 밤이 어두울수록 주민들 외에도 인근에서 숙박하는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 여행의 끝은 다시 찾아올 일상이기에, 어쩌면 이들은 속초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들이 다시 마주한 일상의 모습은 이전과 분명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바람을 만나고 나서야 땀의 의미와 소중함을 느끼듯, 고된 일상이 있었기에 지금의 휴가와 여유를 즐길 수 있음을 떠올리며 말이다. 어쩌면 이게 바로 우리에게 휴가, 여행이 필요한 이유일지 모른다.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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