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미국 시카고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흥얼거리게 되는 캐럴인데요. 사실 루돌프는 노래가 아니라 동화에서 시작되었고, 이 동화는 어느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마케팅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가난했던 한 작가가 창조한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루돌프 이야기, 지금부터 펼쳐보겠습니다.
글 _ 이주은(《스캔들 세계사》의 저자)

백화점 마케팅을 위해 태어난
크리스마스의 영원한 상징




특유의 붉게 빛나는 코 때문에 따돌림을 받았지만 붉은 코 덕분에 산타클로스의 선택을 받은 크리스마스의 상징, 루돌프. 하룻밤 만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선물을 전하는 산타클로스의 초능력도 실은 루돌프 덕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루돌프가 태어난 곳은 미국 시카고에 있었던 한 백화점이라고 하는데요. 도대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크리스마스 마케팅을 위한 빨간 코

1930년대,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 매출을 높여보고자 어린이용 색칠놀이 책을 제작해 무료로 나눠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색칠놀이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고, 백화점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동화책이 있다면 동화책을 받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며 딸을 키우고 있던 백화점의 카피라이터 로버트 메이는 빚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막대한 빚을 짊어진 채 백화점 카탈로그 속 상품을 소개하는 문구만 쓰는 자신의 삶이 우울하다고 느꼈죠.
동물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동화 집필을 시작한 그는 산타의 썰매를 끄는 순록의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예전부터 덴마크의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미운 아기 오리》를 좋아한 그는 어릴 적 부끄럼도 많고 왜소했기 때문에 자신처럼 소외된 약자가 성공하는 세상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미시간 호수의 짙은 안개로 가득한 시카고의 겨울밤, 추운 날씨에 선물을 전달해야 하는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빨간 코의 순록…. 그는 대단한 주인공을 탄생시켰다고 자부했지만 이야기를 보고받은 로버트의 상사는 다른 주제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루돌프의 빨간 코가 술에 취한 주정뱅이를 연상케 하여 백화점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죠. 하지만 로버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미술팀의 도움을 받아 코가 빨간 귀여운 순록을 여러 장 그린 뒤 다시 보고했고, 마침내 루돌프의 빨간 코를 이해한 상사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빨간 코 성공 신화

투병 중이던 로버트의 아내는 루돌프 이야기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39년 7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상사가 다른 직원에게 일을 넘겨주려 했지만 오히려 그는 더욱 일에 몰두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8월, 루돌프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됩니다.



연말이 되자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은 계획한 대로 240만 권의 루돌프 책을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책은 출시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종이 부족으로 배포가 중단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꾸준한 인기를 바탕으로 1946년까지 총 6백만 부가 배포되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마케팅 성공 사례인데요. 그럼 이제 로버트는 부자가 되었을까요?

루돌프의 저작권은?
로버트는 백화점 직원으로서 백화점의 마케팅 책자를 만든 것에 불과했기에, 루돌프의 저작권은 그가 아닌 백화점에 있었습니다. 루돌프는 널리 알려지며 승승장구하는데 반해 창작자인 그는 사망한 아내의 병원비를 갚으며 고통 속에 살고 있었는데요. 사연을 알게 된 백화점 사장이 1947년 1월 그에게 저작권을 넘겨주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루돌프를 흔쾌히 넘겨준 이유에 대해 ‘사정이 너무 안타까워서’라는 설과 ‘루돌프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라는 설이 있다고 하네요.
루돌프는 만화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인기가 식을 줄 몰랐습니다. 특히 로버트의 매부인 조니 마크스가 모두가 아는 루돌프 사슴코 캐럴을 만들어내며 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졌죠. 로버트는 1976년 71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100여 개의 루돌프 관련 콘텐츠로부터 꾸준히 저작권료를 받아 중년 이후 돈 걱정 없는 삶을 살았답니다.


루돌프가 사랑받는 이유
아이들이 빨간 코의 루돌프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버트 메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사람이고, 사회의 약자입니다. 커다란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작고 연약하다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빨리, 이야기 속 소외된 약자에 감정을 이입하죠. ‘신데렐라’ ‘미운 아기 오리’ ‘루돌프’ 같은 친구들 말입니다. 그러니 루돌프가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당당하게 이끌 때, 아이들 역시 그 썰매를 끄는 셈입니다. 무척 신나는 간접 경험이 될 거예요.”
비록 백화점 마케팅이라는 너무나 현실적인 이유로 태어난 빨간 코의 순록이지만 루돌프는 남들과 조금 달라도,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오히려 그게 나만의 장점이자 행복일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루돌프의 흔적은 미국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시카고를 방문하시면 커다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다양한 루돌프를 구경할 수 있고, 애틀랜타 인형 박물관에선 루돌프 영화에 나온 루돌프와 산타 인형을 만나볼 수도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크리스마스. 반짝이는 빨간 코의 루돌프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2022-12-01

이주은: 포털 사이트에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동화보다 재미있는 세계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방문자 600만 명의 파워블로그와 ‘눈숑눈숑 역사탐방’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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