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미국 앨라배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천재를 한 명 떠올려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생각할 겁니다. 그림이면 그림, 발명이면 발명, 조각, 해부학, 수학 등 다방면에서 특출난 이탈리아 출신의 천재였죠. 그런데 미국에도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린 천재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수만 명을 먹여 살릴 방법을 연구했던 ‘땅콩 박사’ 조지 카버입니다. 그의 위대한 삶을 따라가 봅시다.
글 _ 이주은(《스캔들 세계사》의 저자)

땅콩으로 세상을 바꾸다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백반집 반찬, 맥주 안주, 아이들 간식으로도 인기가 많은 땅콩은 중국과 인도, 미국 남부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남부 지역은 오래전부터 흑인 노예를 동원한 목화 생산지로 잘 알려진 곳이죠.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곳에서 땅콩을 키우게 된 것일까요? 노예로 태어나 극심한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지만 이에 굴하지 않은 조지 카버 박사와 수많은 선한 이들의 노력이 그 시작이었답니다.



허약했지만 호기심 많았던 아이

1864년, 조지는 카버 집안의 노예인 메리의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허약했던지 매정한 주인이었다면 바로 버려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주인인 모세스 카버와 그의 아내는 노예 제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농장 일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메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늘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죠. 카버 부부는 허약했던 조지를 제외한 조지의 식구들이 다른 집에 팔려 간 뒤에도 진심으로 조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노예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조지를 자식처럼 키웠죠. 조지는 관찰력과 호기심이 뛰어난 아이였고 특히 식물에 관심이 많아 시든 농작물도 금세 되살려내곤 했습니다.


배움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조지는 식물뿐만 아니라, 요리, 음악, 미술 등 매우 넓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4살이 되자 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던 그는 옷가지 몇 개만 들고 흑인 학교가 있는 동네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어느 날 조지는 머물 숙소가 없어 마구간에 몰래 숨어있었는데요. 마구간 주인인 ‘마리아 왓킨스’가 조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조지의 사정을 들은 마리아는 일을 도우면 방을 내어주겠다 했죠. 그 덕분에 조지는 수월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조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첫째는 ‘너는 자유로운 사람이니 더 이상 자신을 ‘카버 집안의 조지’가 아닌 ‘조지 카버’라고 소개하라’, 둘째는 ‘배울 수 있는 만큼 모두 배워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였습니다. 마리아의 조언을 깊게 새긴 조지는 그를 받아주는 학교만 있다면 아무리 멀어도 그곳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차별의 굳센 문 앞에서
조지는 여러 대학에 입학 원서를 넣습니다. 그중 한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학교 관계자는 학교를 찾아온 조지를 보자 그가 흑인인 줄 몰랐다며 쫓아냈죠. 하지만 조지는 포기하지 않았고, 흑인과 백인이 동등하다고 생각한 총장이 있었던 심슨 대학의 첫 흑인 학생으로 입학합니다. 입학 후에는 흑인 학생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교수들조차 생각을 바꿀 정도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후 농사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자 아이오와 농과대학에 들어간 조지는 2년 뒤 농학 및 식물세균학 석사 학위를 따냅니다.

수백 개의 발명품을 만들다
그토록 바라던 학문적 성취를 이룬 조지였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노예 해방 후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흑인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었죠. 조지는 곧장 남부의 목화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흑인 농부들은 목화 바구미라는 해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요. 조지는 농부들에게 땅콩을 심으라고 제안합니다. 당시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땅콩을 심으라는 말에 사람들은 난색을 보였죠. 그러자 조지는 요리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활용해 땅콩을 활용한 요리 백여 가지를 선보입니다. 또, 땅콩으로 구두약, 기름, 연탄 등의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땅콩은 수익성이 있는 상품이 되었고, 땅콩을 재배하는 농가도 늘어나기 시작했죠. 땅콩뿐만 아니라 고구마나 잡초도 활용해 3백 개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었고, 그런 조지 카버를 두고 1941년 타임지에서는 그를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렀습니다.

위대한 발명가 앞에 무릎 꿇은 차별
끝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발명품을 쏟아내며 사람들을 성실히 도왔던 조지 카버는 미국의 루스벨트와 쿨리지 대통령 등을 만나 대화를 나눴으며, 마하트마 간디와는 인도 국민들이 먹을 채소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자동차의 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와도 친하게 지냈는데요. 전 세계 고무 사용량의 1/3에 이르는 합성고무를 함께 만들기도 했습니다. 조지 카버의 명성 앞에서 인종차별은 그 힘을 잃었습니다. 백인과 흑인은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당시의 법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백인 학생들이 조지 카버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진을 칠 정도였죠.


조지 카버의 이름은 학교나 다리 등 미국 내 수많은 건물과 시설의 이름으로 남겨졌습니다. 미주리주에는 조지 카버 공원이, 앨라배마주에는 두 개의 조지 카버 박물관이, 미시간주의 헨리 포드 박물관에는 조지 카버의 생가를 본뜬 오두막이 있답니다. 이토록 훌륭했던 그에 대해 헨리 포드는 에디슨의 뒤를 이을 최고의 과학자라고 말했던 만큼 오늘날까지 그 업적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온갖 어려움과 차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조지 카버. 미국을 방문한다면 그의 위대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2022-11-01

이주은: 포털 사이트에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동화보다 재미있는 세계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방문자 600만 명의 파워블로그와 ‘눈숑눈숑 역사탐방’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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