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이탈리아 나폴리

마르게리타 피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피자입니다. 이 피자의 이름을 왕비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죠. 하지만 이 이야기, 과연 진실일까요? 알고 보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치밀하게 기획된 마케팅이라고 하는데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글 _ 이주은(《스캔들 세계사》의 저자)

마르게리타 왕비가 사랑한 적 없는
마르게리타 피자



쫄깃한 도우에 쭉쭉 늘어나는 치즈, 풍미 가득한 소스와 다양한 토핑까지, 피자의 매력은 무궁
무진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소스, 바질을 올려 만든 마르게리타 피자는 처음 만들어진 지 약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본에 충실한 맛으로 인기가 많은데요. 그런데, 마르게리타 피자가 왜 마르게리타라고 불리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마르게리타 피자의 전설

1889년 6월 11일, 이탈리아의 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게리타 왕비는 매일 먹던 궁중음식이 지겨워진 나머지 서민들이 먹는 음식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폴리의 피자 식당 ‘피제리아 브란디’의 주방장인 ‘라파엘레 에스포지토’를 카포디몬테 궁전으로 불러 왕과 왕비를 위한 색다른 요리를 만들도록 했죠.
에스포지토는 왕비에게 세 종류의 피자를 만들어 바쳤는데요. 한 가지는 치즈가 없는 전통적인 마리나라 피자, 두 번째는 치어(어린 물고기)를 토핑한 피자, 마지막은 에스포지토가 새롭게 창작한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 바질이 들어간 피자였습니다. 빨강, 하양, 초록의 재료로 이탈리아의 국기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모든 피자를 맛본 마르게리타 왕비는 이탈리아 국기를 표현한 피자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왕실은 맛있는 피자를 만들어준 에스포지토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하사했고, 에스포지토는 이 편지를 소중히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왜 피자의 이름이 마르게리타가 되었는지 상상이 가시죠? 그런데 마르게리타 피자 이름의 유래, 과연 사실일까요? 이 이야기는 그저 한 피자 가게의 기가 막힌 마케팅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왕비는 피자를 먹지 않았다

우선, 당시 나폴리 카포디몬테 궁전에 마르게리타 왕비가 머물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889년 6월 11일 아침, 왕비는 다른 궁전으로 이동했고 움베르토 1세도 뒤늦게 아내가 있는 궁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즉, 국왕 부부가 애초에 카포디몬테 궁전에 함께 머무른 적이 없었죠.
두 번째로, 당시의 나폴리에는 콜레라가 극성이었습니다. 위생에 굉장히 민감했죠. 그러니 아무리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 왕비가 서민 음식에 관심이 생겼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으로 여겨졌던 피자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로, 피자 장인이었다는 라파엘레 에스포지토는 1889년 이전까지만 해도 와인 상인으로 유명했습니다. 왕실 문장 사용 허가까지 받은 뛰어난 와인 상인으로 인정받던 그를 이탈리아 국왕 부부가 주방장으로 초청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국기를 표현했다는 피자는 해당 일화보다 훨씬 전인 1853년에 나폴리 전통 음식으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이야기의 신빙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겠네요. 하지만 지금도 피제리아 브란디에 가면 왕실이 하사한 편지가 걸려있다고 합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실의 편지라니 그럴듯하지만, 이 역시 수상쩍네요. 편지에 찍힌 왕실 문장은 당시 사용하던 그 어떤 왕실의 문장과도 일치하지 않았고, 왕실의 서명도 다른 편지의 서명과 달랐으며, 편지의 내용 역시 왕실 서류의 서식과 전혀 달랐다고 합니다.


대공황도 이겨낸 스토리텔링
라파엘레 에스포지토의 이야기는 그의 처조카인 브란디 형제들이 피자 가게를 물려받고 이름을 ‘피제리아 브란디’로 바꾼 후인 19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 사이에 처음 등장했는데요. 편지 역시 브란디 형제들이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편지에 에스포지토의 이름이 라파엘레 에스포지토 ‘브란디’라고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브란디는 에스포지토 아내의 성인만큼 에스포지토가 사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브란디’ 가문이 운영하는 ‘피제리아 브란디’ 입장에선 편지에 꼭 ‘브란디’가 들어가야 했겠죠?
1930년대 대공황 속에서 휘청이던 피자 가게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낸 이 마케팅은 획기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죠.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마르게리타 피자의 원조로 인정받아 손님이 끊이질 않는답니다.

아름다운 항구의 절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나폴리를 여행한다면 피제리아 브란디에 방문해 논란의 편지를 구경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카포디몬테 궁전은 이제 카포디몬테 미술관이 되었으니 그곳에서 마르게리타 왕비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도 흥미롭겠네요. 물론 1889년 6월11일에는 왕비가 없었겠지만요!


2022-10-04

이주은: 포털 사이트에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동화보다 재미있는 세계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방문자 600만 명의 파워블로그와 ‘눈숑눈숑 역사탐방’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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