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이탈리아 시칠리아

글 _ 박진배

La Dolce Vita
이탈리아의 참맛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코발트빛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 로마와 르네상스 유적지, 항구에서 갓 잡은 생선과 와인 등의 풍부한 자원.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를 꼽으라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 아닐까?
이탈리아에는 아기자기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몇 군데의 다소 숨겨진, 특별한 장소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공간들을 둘러보며 현지인의 여유 있고 달콤한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를 경험할 수 있다.


*힐 타운 페루자 Perugia


언덕마을의 실루엣
이탈리아의 언덕엔 작은 ‘힐 타운(Hill Town)’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산이 많은 지형에서 외적의 침입과 내전으로부터 방어적 위치를 구축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들이다. 기원전부터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모습이 만들어진 시기는 중세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다.
힐 타운들은 멀리서 보면 언덕 위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성같이 보인다. 참 드라마틱한 경관이다. 특이한 풍경인데도 눈에 거슬리거나 이질적 요소 없이 잘 짜여있다. 힐 타운들은 마을의 중세적 분위기를 보존하기 위해 건물의 높이, 도로의 폭과 돌출, 상업건물의 종류, 건축 재료 및 개구부의 크기와 모양 등 까다로운 건축법규를 적용한다. 마을 외곽에만 차량 주차가 가능하고 마을 내부로는 차량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덕분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차량이 없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감상할 수 있다. 마을을 아름답게 보존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주민 스스로가 긍지를 갖게 만드는 마음가짐의 발로다.
대부분의 힐 타운들은 체계적인 도시계획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불규칙하게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환경 요소의 조화가 절묘하다. 길과 건물의 색채, 질감, 밀도, 막힌 벽과 열린 공간의 대비가 마치 수백 점의 빼어난 조각 작품을 연속으로 감상하는 것 같다.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 저절로 형성되는 공간의 연출은 시점마다 변한다.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캄포(Campo, 광장)나 언덕 아래의 풍경은 덤이다. 여기에는 자연환경과 인간의 생활, 그리고 건물 형태 간의 친밀한 상호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지적이고 양식적인 압박에서 탈피한 자유로운 구성, 거주자의 삶과 조경에 꼭 맞게 짜인 형태들, 이탈리아의 힐 타운은 실로 아름다운 마을의 모델을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진 두 마을이 있다. 바로 토스카나 지방의 ‘코르토나(Cortona)’와 ‘아레초(Arezzo)’다. 각각 ‘다이앤 레인’ 주연의 ‘투스카니의 태양(Under the Tuscan Sun)’과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의 배경이 되면서 알려졌다. 이 두 영화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시에나, 피사 등의 도시나,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몬탈치노, 몬테풀치아노 등에 비해 보잘것없고 소박하던 두 마을을 일약 대표 관광지로 만들었다. 또한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 불리는 버내큘러 건축*에 관한 관심도 불러일으켰다.
*버내큘러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
Vernacular는 토착어, 토착적인이라는 뜻이다.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지역 양식을 뜻하기도 한다. 일정 지역의 지역적, 풍토적, 기후적, 관습적, 환경적인 조건을 기반으로 생기는 건축을 말한다.



빨래의 풍경과 나폴리피자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산업 항구라서 해변의 풍경이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다. 그래도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무대를 장식하는 오페라 하우스가 있고, 중심 광장과 구도심의 골목길 풍경이 이탈리아 남부 도시의 매력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특히 좁은 골목에 파란 하늘과 함께하는 빨래의 풍경이 일품이다.

마당이 없고 협소한 면적에 사는 주민들이 건물 사이에 줄을 연결해 외부로 빨래를 거는 것인데 널려있는 빨래들이 마치 줄타기하는 것 같다. 빨래를 수십 년 걸다 보면 나름의 노하우와 미적 감각이 생긴다. 무게의 균형을 잡거나 유사한 옷감의 빨래를 모으는 건 기본이고, 크기별로, 또 색상별로 코디도 한다. 그렇게 나름의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는 빨래가 걸리는 골목길의 풍경까지 고려한 행위다. 그 예술적 감각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의 하늘을 수놓는 섬유의 오브제가 아름다워 나폴리의 관광안내서에도 꼭 소개된다.



이탈리아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피자 역시 나폴리에서 시작되었다. 피자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등 화덕에 구웠던 파이에서 기원을 찾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피자는 19세기 말 나폴리를 탄생지로 규정하고 있다. 1889년 나폴리를 방문한 ‘마르게리타(Margherita)’ 여왕을 위해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 쉐프가 토마토소스에 모차렐라 치즈와 바질을 얹어 파이를 구웠다고 한다.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으로 애국심을 반영했다는 이 피자가 ‘마르게리타 피자’다. 지금은 에스포지토의 처조카인 브란디 형제들이 ‘피제리아 브란디’를 운영하고 있다.

시칠리아의 일곱 생선 만찬
 


삼각형 모양의 시칠리아섬은 세 개의 다른 바다를 면하고 있다. 매일 새벽 항구에는 주변 바다에서 잡힌 참치, 아귀, 상어, 정어리, 오징어, 새우, 조개, 홍합 등이 넘쳐난다. 마치 해물의 만화경을 보는 것 같다. 골목의 생선 가게 좌판들도 인근 수산시장에서 막 도착한 생선들로 윤기가 가득하다. 갓 잡힌 생선 냄새가 부드러운 바닷바람과 섞이고, 큼직한 자갈로 포장된 도로 바닥은 생선 기름으로 반짝인다.
가게 주인들은 각기 다른 톤과 억양으로 손님을 끌어모은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바다를 주제로 살롱이 열린다. 이야기는 새벽에 잡힌 생선이나 날씨로 시작되다가 섬의 역사와 추억, 그리고 이방인에 관한 내용으로 옮겨 간다. 시칠리아의 역사가 이방인이었던 본인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살롱을 주최하는 호스트처럼 친절하며 주로 대답하는 역할을 한다. 마치 작은 마을 극장의 무대와 같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손님 몇 명은 바로 옆 노천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구운 생선과 성게알, 고등어 파스타와 화이트 와인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
음식은 끼니지만 생선은 기쁨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곱 생선 저녁(Seven Fish Dinner)’을 먹는다. 생선이랑 해산물들로 풍성하게 구성된 만찬이다. 이는 일 년 내내 생선가게 앞에 모여 일상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전통일 테다.


2023-04-03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다.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서울의 ‘민가다헌’ 뉴욕의 ‘프레임 카페’와 ‘곳간’을 디자인했다. 저서로는 《천 번의 아침식사》 《공간미식가》 《뉴욕 아이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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