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독일 바이에른

잘생기고 다정한 왕자님은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나요? 독일의 루트비히 2세(이하 루트비히)는 빼어난 미모에 다정다감하고, 예술과 멋을 사랑하는 왕자였습니다. 우리가 동화 속에서 봐왔던 왕자의 모습 그대로였죠. 하지만 당시에는 국민과 신하들로부터 온갖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걸까요?
글 _ 이주은(《스캔들 세계사》의 저자)

미스터리로 남은
동화 속 왕자님


호엔슈반가우 성
동화 속에서 살고 싶어

‘아름다운 왕자’ 루트비히는 1845년 독일 바이에른의 국왕 막시밀리안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막시밀리안 왕가는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했는데요. 그 왕가의 장남이란 명성만큼 루트비히 또한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루트비히는 출중한 미모만 보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화 속 왕자들이 그러하듯 예술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는데요. 특히 용맹한 기사와 아름다운 공주, 환상적인 마법으로 가득한 중세 시대의 전설 이야기를 좋아했죠. 마침 그가 살고 있던 호엔슈반가우 성도 중세시대 놀이에 심취하기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이 성은 중세시대에 지어진 뒤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개축한 성으로,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될 만큼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루트비히는 이곳에서 시를 낭송하고, 직접 연극을 연기하며 자신만의 꿈에 푹 빠진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루트비히 2세

정치를 싫어하는 왕
루트비히가 왕위에 즉위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18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젊은 왕의 탄생에 환호했지만, 루트비히는 정치도, 경제도 잘 알지 못했죠. 그가 아는 건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예술과 문학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트비히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극장을 만들어 셰익스피어와 모차르트, 몰리에르 등을 소개하며 국민들에게 예술을 알리는 데에 힘씁니다. 심지어 능력은 뛰어나지만 빚더미에 앉아있었던 음악가 바그너를 직접 불러, 빚을 갚아주고 후견인을 자처할 정도였죠. 루트비히의 이러한 관심과 열정 덕분에 뮌헨은 예술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왕이 정치는 안 하고 음악가랑 놀기만 한다며 비난했죠. 바그너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곤, 동성애자가 아니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훗날 이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실제로 루트비히는 유독 젊은 남자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바그너를 포함해 마구간 관리인, 헝가리의 유명 배우 등 여러 남자들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루트비히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무척 괴로워했고, 이에 관해상세히 적어 둔 속마음이 그의 일기장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꿈으로 지은 성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문학에 빠져 지냈기 때문일까요? 루트비히는 동화 속 세상을 동경했습니다. 오늘날의 여느 예술인들처럼 낮에 자고 밤에 생활했고, 중세 갑옷이나 옷을 즐겨 입었으며, 황금마차를 타기도 했죠.
루트비히의 예술적 성향은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만드는 것으로 정점을 찍습니다. 평소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무척 좋아했던 루트비히는 프랑스 고유의 화려한 문화를 동경하며, 사비를 털어 성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독일의 노이슈반스타인, 헤렌킴제, 린더호프 성 등이 바로 이때 완성됩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

루트비히는 이 중에서도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동화 속 성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성이 다 지어지기 전부터 이곳에 살았을 정도로 애정을 보였죠. 노이슈바인스타인 성은 완공되기까지 17년이나 걸렸지만, 루트비히의 기대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월트 디즈니 성도 바로 노이슈바인스타인 성을 모티브로 제작됐답니다.


성의 아름다움이야 인정받았지만, 이 역시도 국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습니다. 당시 바이에른의 국민들은 부채로 허덕이며 굶주리고 있을 때라, 화려한 성의 모습이 좋게 보일 리없었죠. 심지어 신하들은 루트비히를 정신병으로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 진단서에는 여름에도 코트를 입어서, 어린애처럼 밥을 먹어서, 부끄러움이 심해서 등 말도 안되는 이유가 담겨 있었습니다.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고 싶다
결국 루트비히는 1886년에 폐위되었고 동생인 오토 왕자가 즉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루트비히는 한 호숫가 옆에서 죽은 채 발견됩니다. 그의 죽음은 오늘날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호수는 수심이 매우 얕기 때문에 익사할 깊이가 아니었고 폐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머리와 어깨에 남은 상흔을 통해, 그가 누군가에게 습격받았다는 정도만 추측할 뿐이죠. 루트비히는 생전에 ‘나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미스터리로 남고 싶다’라는 말을 전했다고 해요. 그 바람처럼 그의 죽음은 영원한 미스터리가 되었습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루트비히가 사망하고 7주 뒤 대중에게 공개됩니다. 루트비히를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었던 이 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막대한 관광 수익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1년에 무려 130만 명이 찾는 독일 최고의 명소가 되었는데요.
만약 여러분이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방문한다면 루트비히가 보여주고 싶었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또, 루트비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호엔슈반가우 성도 꼭 들러보길 추천합니다. 성에 들어가면 꿈꾸는 동화 속 왕자님이 전설 속 영웅담에 푹 빠져들었던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 성은 가이드와 함께해야만 입장이 가능하고 입장 인원도 정해져 있습니다. 성수기에 찾으신 다면 꼭 미리 준비하시길 권해드려요!



2022-04-01

이주은: 포털 사이트에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동화보다 재미있는 세계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방문자 600만 명의 파워블로그와 ‘눈숑눈숑 역사탐방’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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