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프랑스 베르사유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대게 문란하다, 사치스럽다, 악독하다, 교활하다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떠오를 겁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당시에도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숱한 비난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 _ 이주은(《스캔들 세계사》의 저자)

마리 앙투아네트
드레스의 비밀


소박한 악녀(?)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 부리고 나라를 뒤흔든 ‘악녀’란 이미지와 달리, 소박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남편 루이 16세가 선물로 내어준 베르사유 안의 작은 저택 ‘프티 트리아농’을 좋아했는데요. 그는 이곳에 갈 때마다 빛나는 드레스 대신 동화 속 시골 아가씨가 떠오를 법한 소박한 옷들을 즐겨 입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이 아닌 고전적이고 심플한 저택의 이미지에 맞춰, 편한 옷차림으로 생활한 거죠.



 

어느 무더운 여름날, 마리 앙투아네트는 눈이 확 뜨이는 드레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새하얀 모슬린 드레스였는데요. 모슬린 드레스는 실크 드레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얇은 소재로이루어져 훨씬 시원했던 덕에 당시 사람들이 즐겨 입기 시작하던 참이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모슬린 드레스에 푹 빠졌고, 이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초상화로 남겼습니다. 왕족의 초상화라면 마땅히 갖춰야하는 프랑스 왕실 문양도 없고 비싼 보석, 화려한 화장도 없는 그림이었죠. 사실 요즘에는 권력을 가진 인물이 수수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다니면 오히려 국민들의 호감을 사는 경우가 있지만, 그 당시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상화가 공개되자, 대중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프랑스의 왕비가 하녀처럼 보인다!’라며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입어서 문제야!”
대체 왕비가 소박하고, 편하게 입겠다는데 그게 왜 비난의 이유가 됐을까요? 이해가 안 가죠? 이제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는데요. 프랑스 국민들은 그가 왕실 가문의 전통과 이미지를 추락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여자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실의 권위와 이미지를 멋대로 바꾸려 한다고 느낀 거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모슬린 드레스를 비롯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트리아농에서 즐겨 입었던 패션 전부를 ‘오스트리아 여자’의 일탈이자 프랑스를 거역하는 행동이라고 여겼습니다.
두 번째는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옷이 곧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냈습니다. 신분 별로 옷의 형태와 색, 소재, 패턴 등이 달랐죠. 귀족들은 쨍하고 진한 색상에 벨벳, 실크, 새틴 등 비싼 소재가 들어간 옷을 입었습니다. 또한 다양하고 커다란 보석, 큼직하고 고풍스러운 패턴 등을 사용해 부와 지위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라에서 가장 높은 여인인 왕비가 연한 색상에 면, 거즈, 모슬린과 같이 저렴한 소재로 만든 소박한 디자인의 옷을 입은 겁니다. 왕비와 귀족은 다른 계층이 따라하기 힘든 존재여야 하는데, 이런 편한 차림을 입으니 하녀와 왕비가 같은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셈이죠. 즉, 마리 앙투아네트는 신분 격차의 선을 흐리게 만든다는 이유로 다른 귀족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즐겨 입었던 옷감이 영국에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프랑스의 실크 산업은 온전히 귀족 계층에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리 앙투아네트가 영국에서 들여온 모슬린과 리넨을 입으면서 실크의 판매량은 떨어지고 모슬린과 리넨의 수입량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행보를 비판하면서도, 국가 최고의 ‘셀럽(Celebrity)’인 그의 패션을 따라 한 거죠. 모슬린 드레스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순식간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식민지를 두고 전쟁 중이었으므로 양 국가 간의 관계가 좋지 못했는데요. 사람들이 영국에서 들여온 옷감에 열광하고 있으니, 프랑스의 귀족들에겐 마리 앙투아네트가 더욱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슬린 드레스 초상화(좌) / ‘비제 르 브룅’이 다시 그린 초상화(우)

 

누구나 욕하지만, 누구나 따라 하고 싶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슬린 드레스 초상화가 여러모로 화제를 모으자, 이 초상화는 금방 자취를 감췄습니다. 당시 그의 초상화를 그렸던 화가 ‘비제 르 브룅’은 서둘러 다시 그림을 그렸는데요. 이번엔 정원을 산책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왕비 모습의 정석처럼 실크 드레스와 화려한 보석도 함께 그려, 사람들의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이후로도 편한 옷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되려 트리아농뿐만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을 다닐 때도 편한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썼으며, 딸에게도 똑같은 드레스를 입혔습니다. 사람들은 눈치 보지 않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고 뉘우칠 줄도 모르는 태도라며 충격을 받았죠.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비난은 계속되었고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그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떠올리듯, 아직까지 그 비난이 이어져오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어떤가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레스 속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모르셨죠?


국민의 미움과 사랑을 모두 받았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는 지금도 베르사유를 대표하는 관광콘텐츠 중 하나입니다. 혹시 베르사유를 방문한다면 꼭 마리 앙투아네트가 좋아했던 프티 트리아농을 찾아가 보세요. 화려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드는 궁전 속 작은 도피처 프티 트리아농, 그 속에서 안락함과 따뜻함을 찾고 싶어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음을 헤아려 보시길 추천합니다.



2022-02-01

이주은: 포털 사이트에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동화보다 재미있는 세계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방문자 600만 명의 파워블로그와 ‘눈숑눈숑 역사탐방’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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