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이층 버스’ ‘털모자를 쓴 근위병’ ‘빅벤’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런던입니다. 런던에 여행을 갔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죠. 템스강 북쪽에 있는 ‘런던탑’인데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런던의 랜드마크인 이 탑 아래에 아주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집니다.
글 _ 이주은(《스캔들 세계사》의 저자)
런던탑에 묻힌 거인의 머리
'탑’이라고 하면 마치 라푼젤이 사는 듯한 기다랗고 높은 탑이 떠오르시죠? 영국의 런던탑은 전혀 다른 형태입니다. 10여 개의 탑과 성벽으로 이뤄져 거대하고 웅장하죠. 런던탑은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왕의 거처, 요새, 처형장 등 영국의 역사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죠. 이처럼 영국의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런던탑엔 수많은 유령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건 런던탑 아래에 거인의 머리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과연 그 거인은 누구일까요?
거인 왕의 아름다운 여동생
《마비노기》는 웨일스에 거주하는 영국인들의 전설 모음집입니다. 웨일스어로 ‘이야기’를 뜻하죠. 바로 이 마비노기에 따르면 먼 옛날 브리튼 섬에 거인 왕 ‘브란 벤디게이드’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그의 여동생 ‘브란웬’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일랜드의 왕 ‘마솔루흐’가 찾아와 브란웬과의 결혼을 통한 두 왕국의 동맹을 제안합니다. 마침 후계자가 필요했던 마솔루흐는 결혼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계획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피로연에서 벌어졌습니다. 결혼 소식을 몰랐던 브란의 이부동생 ‘에브니시엔’이 자신과 동맹에 관해 상의하지 않은 것에 무척 화가 나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에브니시엔은 마구간으로 달려가 신랑 마솔루흐 쪽 손님들이 타고 온 말들을 잔인하게 학대했습니다. 마솔루흐도 크게 화가 났죠. 당황한 브란은 상황을 해결하고 마솔루흐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보물창고에서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법의 솥’을 꺼내 선물했습니다.
어찌저찌 해피엔딩이 되는 듯했으나, 이번엔 에브니시엔이 옛 기억을 떠올린 걸까요? 그는 조카이자 아일랜드의 왕이 된 그웨른을 불에 던져 죽여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피 튀기는 전쟁이 다시 한번 벌어졌죠. 마솔루흐는 브란에게 선물받은 마법의 솥을 사용해 죽은 병사들을 계속 되살려냈습니다. 병사들이 좀비처럼 끊임없이 살아나자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처참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에브니시엔이 자신을 희생해 마법의 솥으로 뛰어들어 솥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승리는 브란에게 돌아갔지만, 브란 측 생존자는 고작 7명밖에 남지 않았던 안타까운 승리였습니다.
한편, 브란 또한 독이 발린 창에 찔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 부하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목을 잘라 런던 화이트힐에 묻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가 묻혀 있는 동안에는 ‘이 땅을 침략자로부터 지키겠다’라고 말했죠. 바로 이 화이트 힐 위에 세워진 건물이 런던탑입니다.
202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