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프랑스 파리

글 _ 박진배(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카페와 빛의 도시
파리




프랑스에는 ‘플라노(flneur)’라는 단어가 있다. 도시의 거리와 골목들을 천천히 거닐며 보고 느끼는 행위를 의미한다. ‘도시를 보는 최고의 방식’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사물을 보고 느끼는 철학적 사고로 이른다. 그 중심에는 카페에서의 머무름이 포함된다.

파리의 카페
파리 시민 대부분은 호텔 방보다 약간 더 큰 아파트에 산다. 그래서 집에는 따로 서재나 손님을 접대할 공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운 카페를 이용한다. 파리에만 1만 2천여 개의 카페가 있다. 카페는 파리지엔느의 거실이자 응접실이다. 카페에 가면 냉난방이 제공된 환경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도 있다. 커피 한 잔은 사교의 매체이자 고독과 독서의 동반자다. 일반적으로 커피나 차, 디저트를 즐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간단한 식사를 하기에도 적합하다.
카페는 동네마다 있고 보통 하루 종일 영업한다. “내가 가고 싶을 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곳에서 먹는다”라는 파리지엔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다. 이곳의 서비스는 느리다. 하지만 여기서는 빨리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먹는 게 중요하다. 식사하다가 남은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 치즈를 주문하고, 또 남은 치즈를 끝내기 위해서 와인을 더 주문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20세기 초반, 파리에 카페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집회 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렸기 때문에 그런 절차가 필요 없는 카페에 사람들이 모이고 토론이 이루어졌다. 정치와 철학이 논의되고 문학이 창작되었으며, 예술적 아이디어와 영감의 발표 현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레닌과 엥겔스가 더 좋은 세상을 꿈꾸었고, 카뮈가 《이방인》을 썼으며, 사르트르와 생텍쥐페리, 헤밍웨이는 삶의 순간에 관한 생각을 글로 옮겼다. 파리의 카페들은 수많은 문학에서 다루어졌고 회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공연의 배경이 되었다. 이런 전통을 바탕으로 파리의 카페들은 전 세계 카페 문화의 근본을 만들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20세기 초반, 파리에 카페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집회 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렸기 때문에 그런 절차가 필요 없는 카페에 사람들이 모이고 토론이 이루어졌다. 정치와 철학이 논의되고 문학이 창작되었으며, 예술적 아이디어와 영감의 발표 현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레닌과 엥겔스가 더 좋은 세상을 꿈꾸었고, 카뮈가 《이방인》을 썼으며, 사르트르와 생텍쥐페리, 헤밍웨이는 삶의 순간에 관한 생각을 글로 옮겼다. 파리의 카페들은 수많은 문학에서 다루어졌고 회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공연의 배경이 되었다. 이런 전통을 바탕으로 파리의 카페들은 전 세계 카페 문화의 근본을 만들었다.

빛의 순간을 담다
황금빛으로 밝혀지는 에펠탑과 센 강의 다리들, 빨간 카페의 차양과 물랑 루즈(Moulin Rouge)의 조명은 대표적인 파리의 이미지다. ‘빛의 도시(La Ville Lumire)’라는 별명처럼 파리는 빛으로 인하여 매일매일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탄생한다. 새벽과 오전, 늦은 오후, 해 질 무렵과 밤의 각기 다른 빛이 건물과 거리를 비추는 풍경은 타 도시가 흉내 내기 어려운 연출이다. 심지어 비 오는 날 길거리나 광장의 바닥에 반사되는 빛조차 아름답다.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는 햇빛과 조명을 이렇게 자기만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 빛을 흡수하는 멋진 배경이 있어야 한다. 즉 도시가 아름다워야 한다. 다른 도시의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는 기능을 위해서 설치되었다면, 파리의 가로등은 건물과 거리의 모습을 비추도록 섬세하게 배치되었다. 그래서 고전적이고 온화한 베이지색 건물에 가깝게 위치하고, 그 아름다운 윤곽을 투영할 수 있도록 작동한다. 그냥 흐르거나 분산되는 빛을 잡아서 예술적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다. 파리의 빛은 르누아르, 모네, 뒤피와 같은 화가들이 화폭에 옮기려 했던 요소이자 소재이기도 하다. 이 화가들에게 빛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서 이들은 파리의 거리와 공원을 거닐며 관찰하고 작품의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빛의 순간을 담다
황금빛으로 밝혀지는 에펠탑과 센 강의 다리들, 빨간 카페의 차양과 물랑 루즈(Moulin Rouge)의 조명은 대표적인 파리의 이미지다. ‘빛의 도시(La Ville Lumire)’라는 별명처럼 파리는 빛으로 인하여 매일매일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탄생한다. 새벽과 오전, 늦은 오후, 해 질 무렵과 밤의 각기 다른 빛이 건물과 거리를 비추는 풍경은 타 도시가 흉내 내기 어려운 연출이다. 심지어 비 오는 날 길거리나 광장의 바닥에 반사되는 빛조차 아름답다.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는 햇빛과 조명을 이렇게 자기만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 빛을 흡수하는 멋진 배경이 있어야 한다. 즉 도시가 아름다워야 한다. 다른 도시의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는 기능을 위해서 설치되었다면, 파리의 가로등은 건물과 거리의 모습을 비추도록 섬세하게 배치되었다. 그래서 고전적이고 온화한 베이지색 건물에 가깝게 위치하고, 그 아름다운 윤곽을 투영할 수 있도록 작동한다. 그냥 흐르거나 분산되는 빛을 잡아서 예술적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다. 파리의 빛은 르누아르, 모네, 뒤피와 같은 화가들이 화폭에 옮기려 했던 요소이자 소재이기도 하다. 이 화가들에게 빛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서 이들은 파리의 거리와 공원을 거닐며 관찰하고 작품의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이라는 파리의 메트로(Metro) 입구는 20세기 초반 벨기에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던 ‘아르 누보(Art Nouveau)’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주물로 만들어진 형태는 빨간 꽃봉오리나 식물 줄기 모양 등 자연의 영감을 반영하는 화려한 곡선미를 강조한다. 살바도르 달리가 ‘지하의 공간으로 내려가는 성(聖)스러운 미래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던 곳이다. 어둠이 질 무렵 이 꽃봉오리 등이 불을 밝힌다. 그러면서 카페의 노란 조명과 ‘싱커페이션*’을 이룰 때 파리의 빛은 특히 아름답다. 여기에는 도시의 세련됨과 쓸쓸함, 낭만과 고독, 그리고 지성의 표정이 모두 담겨있다.


*싱커페이션 Syncopation
한 마디 안에서 센박과 여린박의 규칙성이 뒤바뀌는 현상

나만의 도시, 파리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도시다.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풍경 중 하나가 길모퉁이마다 위치한 빨간 차양의 카페들이다. 하지만 도시 경관 중에서 으뜸은 오히려 카페 안에 앉아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다. 거리를 바라보면 멋쟁이 파리지엔느들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속으로 돌아간다. 행인들도 아름다운 경관의 일부가 된다. 그들의 모습에서 문학과 감성, 패션과 트렌드, 그리고 스토리를 읽는다. 어느 순간 나만의 세계로 몰입한다. 카페는 고객들로 붐비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다. 예술적 순간, 감각적 순간이 느껴지고 곧 철학적 사고로 이어진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파리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읽고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카페에 앉아 있으면 이 도시가 나에게 회답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완전한 ‘내’가 된다.


파리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하루 평균 식사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더 길다. 아마 식사를 하면서도 은은히 변하는 빛을 즐기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빛을 찬미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상은 파리지엔느가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도시 곳곳에 투영되는 빛을 느끼고 감상하는 건 파리를 경험하는 근사한 방법이다.

2023-12-01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다.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서울의 ‘민가다헌’ 뉴욕의 ‘프레임 카페’와 ‘곳간’을 디자인했다. 저서로는 《천 번의 아침식사》 《공간미식가》 《뉴욕 아이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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