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글 _ 박진배(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남미의 문화를 맛보다




우리에게 남미대륙은 가깝지 않게 느껴진다. 실제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방문하려면 미국 항공편을 경유해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친숙하지 않은 대륙이지만 격변의 역사와 문화가 토착성과 이국성을 풍기며 우리를 초대한다. 남미의 여러 나라 중에서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하고 큰 면적을 가진 아르헨티나의 매력을 소개한다.

 
 

아르헨티나 스타일 바비큐
인류는 오랫동안 소를 키우고 도축해서 식량으로 이용해 왔다. 사람보다 소의 숫자가 많은 아르헨티나는 소고기가 특히 유명한 나라다. 광활한 목초지에서 자라는 아르헨티나의 소는 고기의 씹는 맛과 풍미가 아주 좋다. 곡물 사료를 먹인 소가 마블링이 좋다지만 아르헨티나의 소는 풀을 먹고 자랐는데도 육질이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소고기를 먹는 방법은 ‘아사도(Asado)’다. 목동인 가우초들이 캠프파이어를 하며 불 옆에 고기를 세워 걸고 구워 먹던 데서 유래되었다. 아사도는 남미 전체에 보편화되어 있지만 아르헨티나가 원조다. 형식이 간편해지면서 근래에는 보통 ‘파리야’라고 부르는 무쇠 그릴을 사용한다.



아사도에서 불을 다루고 고기를 굽는 사람을 ‘아사도르(Asador)’라 부른다. 아사도르는 미리 몇 군데 정육점에 들러서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구입한다. 모두 신선육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냉동고기는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 아사도의 시작은 장작용 나무를 태워서 숯을 만드는 작업이다. 숯 위에 고기를 얹으면 마법이 시작된다. 소고기를 잘 아는 나라답게 양지, 토시, 갈비, 곱창 등을 골고루 펼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천천히 익힌다. 강한 불에 빠르게 굽는 우리의 직화구이와는 다른 방식이다. 아사도르는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다 한다. 다른 사람들은 참견하거나 거들지 않는 것이 아사도에서의 예의다. 소금 이외에 소스는 필요 없다. 좋은 고기에 소스를 바르는 것은 죄악이다.



"누구나 불 위에 고기를 얹을 수는 있지만 소수의 장인만이 맛있는 아사도를 완성할 수 있다."

아사도를 배우기 위한 대학 과정도 개설되어 있어서, 핵심 12과목을 이수하면 공식 마스터로 인정해 준다.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가정에는 파리야가 설치되어 있고, 일주일에 몇 번씩 아사도를 먹는다. 가족이나 친구 모임, 특별한 행사를 위한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아사도이기 때문이다. 현지인들 말대로 결혼할 때도, 이혼할 때도 음식은 아사도라고 한다. 아사도는 하나의 사회적 행위다. 자신들의 전통을, 문화를, 그리고 사람들을 찬양하는 의식이다. 아사도와 관련된 아르헨티나 사람들 사이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불 옆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된다. 전자레인지 근처에 어울려 친구가 되는 사람은 없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아사도에 진심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동쪽에 ‘레콜레타(Recoleta) 묘지’가 있다. 182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서 최초의 공동묘지로 공표하고 계획되어 올해 2백 년이 되었다. 당시 부유했던 아르헨티나는 ‘작은 파리’를 표방하며 프로젝트의 설계를 프랑스의 토목공학자인 ‘프로스페로 캐트린(Prospero Catelin)’에게 맡겼다. 그렇게 BBC, CNN 등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라고 언급한 명소가 탄생했다. 유럽의 채석장에서 실어 온 돌로 만든 석관들은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아르누보를 망라하는 건축양식을 선보인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만 94개다. 약 1만 7천 평의 대지에는 시인, 군인, 기업인, 물리학자, 역대 대통령, 그리고 배우 ‘에바 페론’ 등이 묻혀있다.




묘지 공원의 입구를 들어서면 큰 길이 뻗어 있고 거기서부터 나누어진 작은 골목을 따라 묘지 집들이 도열해 있다. 디자인도 모두 다르다. 큰 집, 작은 집, 정원이나 루프탑이 있는 집도 있다. 사이사이에 작은 녹지도 마련되어 있다. 흡사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의 미니어처를 보는 듯하다.
묘지를 마을처럼 꾸민 이유는 떠난 자에게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자신이 살던 마을, 거닐던 광장, 나무 아래 벤치와 같은 기억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안에서 걷다 보면 묘지의 근경과 주변 아파트의 원경이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살고 있는 사람과 떠난 사람과의 공존이다. 추모 공간이 가까운 곳에 공원처럼 있어 늘 찾아가고 그리워할 수 있는 개념이 참 좋다. 삶과 죽음을 하나의 패키지로 해석, 도시 계획에 적용한 것이다.




멘도자 국도의 푸드 트럭
와인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멘도자(Mendoza)’ 지역. 시내에서 멘도자의 와인 생산지로 향하는 40번 국도 풍경은 다소 지루하다. 이 도로의 중간지점 즈음, 상행선과 하행선 사이의 다소 넉넉한 공터에 낡은 푸드 트럭이 한 대 서있다. 하몽(스페인 햄)과 아사도 샌드위치를 판다.
젊은 셰프는 손님이 말을 시켜주면 언제나 맑게 웃고, 기분이 좋으면 와인도 한잔씩 무료로 건넨다. 휴게소에서 파는 간식들이 마땅치 않아 운전자들은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 당연히 수입도 꽤 좋다. 국도변에 푸드 트럭을 차리고 장사를 하는 데는 특별한 허가도 필요 없다. 그래서 독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근처에 유사 업종의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길 법하다. 그러면서 원조 경쟁이 붙고, 무슨 거리가 되고 하는 등의 그림이 쉽게 상상된다. 그런데 몇 년째 이 국도에 다른 어느 푸드 트럭도 보이지 않는다. “장사가 잘되는데 왜 경쟁자가 없나?”라고 물어봤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 누구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소 충격적인 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헨티나는 넓은 면적의 국토, 가스, 석유 등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춘 나라다. 한참 잘 나갈 때는 남미의 유럽이라 불리며 주변국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하지만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의 전환이 늦었고, 연달아 3차, 4차 산업의 준비도 뒤처지며 경제적 쇠퇴가 다가왔다. 그와 더불어 1940년대 노동자 권익 보호, 사회정의 등을 내세운 ‘페론주의’ 이후에 군부독재도 겪었다. 이런 격변 속에 국가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타락했고 여러 번의 부도가 났다. 하지만 지금도 선거 때면 후보자들은 과도한 복지와 포퓰리즘의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임을 자처한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푸드 트럭 한 대는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의 생각과 정서를 잘 대변하는 듯하다.


2023-10-01

박진배 :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다.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서울의 ‘민가다헌’ 뉴욕의 ‘프레임 카페’와 ‘곳간’을 디자인했다. 저서로는 《천 번의 아침식사》 《공간미식가》 《뉴욕 아이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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