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벨기에 브뤼셀

글 _ 박진배(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섬세함이 아름다운
예술의 벨기에




벨기에 브뤼셀은 파리처럼 로맨틱하지도, 런던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것도 아니지만 차별화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케이크는 오스트리아 것만큼 예쁘고 맛있으며, 350여 종의 맥주도 독일이나 체코의 맥주와 견줄 만큼 다양하고 훌륭하다. 무엇보다 꽃이 인근 네덜란드만큼 유명해서 도시 전체가 꽃의 향기에 젖어있는 곳이다.

 

아르누보의 도시
아르누보란 20세기 초반 벨기에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던 예술운동을 말한다. 일반인들에게 아르누보는 패션이나 뷰티 제품 광고, 유리 공예 양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덩굴식물과 같은 자연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유연한 선, 꽃무늬의 반복적인 패턴이 특징이다.


아르누보는 벨기에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풍요로운 장식은 여타의 예술사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브뤼셀은 100여 년 전 찬란했던 예술 양식 아르누보를 소중한 문화로 잘 보존하고 있다.


‘오르타 박물관(Musee Horta)’은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인 ‘빅터 오르타’가 살던 집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장소다. 자연, 어떻게 보면 가장 간단한 것의 정확한 의미와 독창적인 형태를 찾기 위한 예술적 감수성이 아르누보의 자랑이다. 건축, 인테리어, 가구, 패션, 유리, 인쇄, 장식품을 망라한 전 분야의 디자인을 하나의 패션으로 통일시켰던 역사상 유일한 디자인 사조가 아르누보다. 이미 한 세기가 지나가는 무렵인 현재에도 찬란하게 그 가치를 나타내며 감동을 전해주는 건 브뤼셀을 찾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만화와 교감하다
브뤼셀의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재미있는 풍경을 만난다. 삐져나온 건물 외벽 등에 대형 만화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다. 시 외곽까지 포함하여 수십 개의 만화가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1991년 브뤼셀 시의회가 만화박물관과 협력하여 ‘시민들이 사랑하는 만화를 거리로 가져오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시작한 프로젝트다. 벽화를 보고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미소를 짓는다. 만화 속 추억의 명장면들이 순식간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의 정서를 수십 년 전으로 돌려놓는다. 마치 만화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다. 옛날에 보았던 스토리와 장면들이 기억나고 저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마음에 만화가 있으면 동심이 있고 행복이 있다. 브뤼셀의 거리에는 행복이 있다.




만화는 벨기에의 가장 매력적인 문화상품이다. 벨기에는 국토 면적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만화가가 활동하는 나라다. 매년 3천 종이 넘는 만화가 만들어지고 전 세계 만화책의 20%가 이곳에서 출판된다. 시내 곳곳에 만화책과 캐릭터 상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고 만화 제목으로 명명된 길 이름들도 있다. 이곳에서 만화는 ‘방드 데시네(Bande dessinee)’라고 불리는데 불어로 ‘그림띠’라는 뜻이다. 만화는 이미 1960년대부터 제9의 종합예술로 자리를 잡았고,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만화전시회가 열릴 만큼 예술 차원에서 인정받고 있다.
브뤼셀 시내에는 만화박물관(Centre Belge de la Bande dessinee)이 있다. ‘탱탱의 모험(Les aventures de Tintin)’이나 ‘스머프(Les Schtroumpfs)’의 커다란 동상이 반기고, 각종 만화 캐릭터 모형과 스케치, 원화 제작 과정, 작가들의 소품과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만화는 이들 인생의 일부다.

"벨기에인의 영혼은 만화와 교감하고 있다."



벨지움 프라이와 초콜릿
감자튀김은 벨기에의 자랑이다. 벨기에에서 감자튀김은 만화의 캐릭터로도 종종 등장한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원조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벨기에는 유네스코에 감자튀김 등재를 신청할 정도로 감자튀김에 진심이다. 벨기에에서 프렌치프라이를 달라고 하면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도시마다 감자튀김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 있다. 거기서는 ‘머뭇거리는 기름으로 튀겨낸 거친 감자 조각’이라고 표현되기도 했다.
17세기 후반, 벨기에의 한 작은 마을에서는 물고기를 주로 튀겨 먹었다. 그런데 겨울에 강이 얼어붙어 낚시가 어려워지자 감자를 대신 튀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프렌치’프라이로 불리는 것인가? 이 음식의 정식 명칭은 ‘폼 프리트(Pomme Frites)’, 불어로 ‘튀긴 사과’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유럽에서는 감자를 ‘흙에서 나오는 사과’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미국에 수입이 되면서 불어 명칭이다보니 다들 프랑스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발음하기 힘든 폼 프리트 대신 프렌치프라이로 부르게 된 것이다. 당시 뉴욕에 살던 작가 오 헨리에 의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전통 폼 프리트는 냉동감자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 생감자만을 사용하여 두 번 튀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한없이 부드러우며,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풍긴다. 일반적으로 케첩을 뿌려 먹는 미국식 감자튀김과 달리 식초나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
감자튀김 이외에도 벨기에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아마 초콜릿 아닐까? 벨기에의 거리엔 초콜릿 상점이 넘친다. 연간 14만 톤의 양, 2조 원이 넘는 매출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초콜릿 생산국답다. 고디바, 길리앙, 노이하우스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대형 브랜드 이외에도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초콜릿들이 수두룩하다. 초콜릿은 입안에서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향을 남기며 금세 녹아 사라진다. 오래 간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달콤한 순간이다. 벨기에 사람들은 이 순간의 행복을 지극히 사랑한다.



마음속의 영원한 파랑새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파랑새(L’Oiseau bleu)’라는 연극이 있다. 벨기에의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작품이다. 어린이가 주인공이지만 어른을 위한 연극이다. 주제 또한 매우 심오하다. 주인공 어린 남매는 파랑새를 찾아다닌다. 파랑새를 잡아서 가져오지만 곧 새의 색이 변하고, 마지막에는 찾은 파랑새마저 날아간다. 여기서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한다. 행복은 저축할 수 없고, 순간에 즐겨야 하며 결국은 마음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극 중에서 주인공 남매가 케이크를 좋아하는 설정 역시 매 순간 달콤한 행복을 찾는 인생을 나타낸다.
벨기에 사람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파랑새를 아주 잘 안다. 그들이 사랑하는 연극을 통해서다. 그리고 그 연극을 통해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실제로는 파랑새가 없지만 마음속에 항상 있는 것처럼 만화 역시 늘 우리의 추억과 함께하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던 그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벨기에의 거리는 달콤한 초콜릿, 만화가 그려진 벽화, 그리고 파랑새를 떠올리게 하며 우리를 섬세했던 동심의 순간으로 돌려놓는다. 


2023-09-01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다.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서울의 ‘민가다헌’ 뉴욕의 ‘프레임 카페’와 ‘곳간’을 디자인했다. 저서로는 《천 번의 아침식사》 《공간미식가》 《뉴욕 아이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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