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덴마크 오덴세

글 _ 박진배

편안함과 기분 좋음을
선사하는 휘게 라이프




워라밸, 소확행과 더불어 ‘휘게(Hygge)’가 트렌드다. 편안함이나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 단어로,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에서 찾는 작은 즐거움을 의미할 때 많이 사용된다. 북구(北歐)의 덴마크는 휘게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대표적인 나라이며, 평생의 가치 기준으로 실천한다. 어린 시절부터 촛불을 켜놓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거나 가족끼리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전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안데르센 박물관 (Haus Christian Andersen Museum) 
 

슬픈 동시에 아름다움을 간직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덴마크는 1973년부터 거의 매년 그 타이틀을 차지해 왔다. 덴마크에서는 어린이도 행복한 어린이들로 자란다. 덴마크의 교육 철학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이제까지 잘 되어왔으므로 부모로부터 배운 대로 자녀를 교육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교육으로 형성된 사고와 생활방식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면 행복도 유지된다.
여기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동화다. 덴마크 동화는 오랜 세월 동안 인기를 누리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 과정에서 해피엔딩으로 각색이 됐지만, 실제로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더 많다. 덴마크 사람들은 상처도 인생의 일부라 생각하고 어린이들에게 고난과 역경을 알려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동화를 통해 행복은 현실을 극복함으로써 온다고 믿게 되며, 그 훈련이 쌓여 저력이 된다.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도 마찬가지다. 대표작인 《미운 오리 새끼》는 따돌림과 차별의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하고 힘든 현실의 슬픈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왕자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거품으로 변해 버린 《인어공주》도 마찬가지다. 안데르센은 슬픈 동시에 아름다운 동화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덴마크 오덴세에 있는 안데르센 박물관에는 이런 내용이 잘 전시되어 있다.



어린이가 질문을 하면 정직한 대답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능력이 있다면 유머를 섞어서 설명해 주면 더 좋다. 환상만 주입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만 읽고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 현실에 직면하면 배반을 느낄 수 있다. ‘백조의 알을 깨고 나왔다면 오리의 둥지에서 태어났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안데르센의 말은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고, 부정적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 미래의 긍정적인 태도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이의 천국


덴마크는 어린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나라다. 안전하고 쾌적한 자연환경, 다양한 장난감과 놀이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덴마크의 블록 장난감 레고 이외에도 비싸지 않으면서 창의적인 장난감들이 수두룩하다. 친환경적인 어린이 가구들의 선택 폭도 넓다.
또한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 한 가운데는 2만 5천 평 면적의 ‘티볼리 가든’이 자리 잡고 있다. 티볼리 가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 세계 놀이공원의 원조이자, 코펜하겐 전통의 가족 공원이다. 도심 주변에도 어린이를 위한 놀이동산이 여럿이다. 거리에는 안데르센을 필두로, 귀담아듣게 되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들이 널려있다.


세 살이 될 때쯤이면 덴마크 어린이의 98%가 공립유치원에 다니게 된다. 거기서 기본적인 언어와 숫자, 사회규범과 타인을 돕는 방법을 배운다. 대부분 ‘자유 놀이(Free play)’라고 불리는 야외활동을 통해서 학습한다. 그러면서 자연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길러지고 저절로 휘게의 생활방식을 익히게 된다. 교육의 핵심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다. 누가 특별하거나 우수하다고 비교하는 법은 없다. 자율성과 호기심을 길러 주면서 개인은 다르다고 가르칠 뿐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유치하고 허황된 꿈만 꾸고 있을 때 ‘철 좀 들어라’라는 표현을 쓴다. 덴마크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어린이가 인생의 시작이자 전부라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 성인과 동일한 개체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 권익 역시 세계의 모범이다.



어른을 위한 작은 장치
덴마크에 어린이를 위한 시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을 위한 대표적인 작은 구조물이 있다. 바로 벤치다. 공원이나 광장의 한적한 주변 자리, 타인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배치된 벤치는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사색의 여유를 제공해 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벤치에 앉아 있는 즐거움이다. 의자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반해 벤치는 나누는 공간이다. 친구나 애인, 동료와 같이 앉거나, 혼자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이 옆에 앉을 가능성을 열어 둔다. 벤치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고, 사람과 자연을 연결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서 톰 행크스가 초콜릿을 먹으며 과거를 회상하고 곁에 앉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곳도 벤치였다.



덴마크에서의 벤치는 휘게의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한다. 도시나 시골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어 사람을 초대한다. 보행자들을 위해서 집 앞 정원에 벤치를 마련해주는 경우도 흔하다. 벤치의 매력은 땅에 붙어 있다는 점이다. 땅과 가까이서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은 값지다.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몸이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도 든다. 원할 때마다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삶의 질은 높다. 기부를 할 때 상징적으로 벤치를 만들어 이름을 새기는 것도 그곳에 앉는 사람들의 좋은 삶을 바라는 의미다.
벤치라는 단어는 스포츠에서도 사용된다. 명감독들은 ‘벤치 스코어’를 잘 만든다. 경기를 보며 앉아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백 가지의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벤치의 휴식이 좋은 것은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한 작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그리고 인생에서도 그렇다. 벤치와 함께하는 최고의 순간은 앉아 있는 동안이 아닌 일어나는 때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코트로 뛰어 들어갈 때,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했을 때 벤치와 이별한다. 내일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긍정하기 위한 순간이다. 이것이 벤치의 매직이다.


2023-08-01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다.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서울의 ‘민가다헌’ 뉴욕의 ‘프레임 카페’와 ‘곳간’을 디자인했다. 저서로는 《천 번의 아침식사》 《공간미식가》 《뉴욕 아이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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