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미국 멤피스

글 _ 박진배

미국 남부로 떠나는 여행




미국을 구분 지을 때 도시와 시골, 해안도시와 내륙도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 지역으로 나누곤 한다. 그러나 미국은 본디 남부와 북부로 구분된다. 미국의 뿌리 깊은 하나의 경계다. 우리에게는 남북전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남부는 독립된 나라처럼 여겨지는 텍사스, 휴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 이외에도 미국인들이 ‘깊은 남부(Deep South)’라고 부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들이 전통과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역사를 따라서, 멤피스 
미국 남부의 관문이자 대표 도시 중 하나는 테네시주의 멤피스다. 그리고 멤피스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는 ‘그레이스랜드(Graceland)’다. 디즈니랜드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레이스랜드는 로큰롤의 황제라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살던 대저택이다. 1991년 국가 유적지로 지정되었고 연간 6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집은 그였지만, 엘비스는 집도, 의상도, 스타일도 늘 고향을 벗어나지 않던, 동네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레이스랜드는 그의 취향을 반영하듯 순회공연 중 수집했던 장식품들로 채워져 있다. 공작 문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원색의 빛을 투영하는 거실, 정글 테마로 꾸며놓은 이국적 공간, 엘비스가 좋아하던 남부 음식인 치킨과 땅콩버터 샌드위치가 차려졌던 다이닝 룸도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유명한 곳은 TV 룸으로 TV를 모두 켜 놓고 당시에 3개 밖에 없던 채널을 동시에 시청했던 획기적인 세팅을 보여준다. 독특한 그의 개성이 저택의 곳곳에 묻어있다.



"아무도 그런
소리를 내지 못했고,
아무도 그렇게
옷을 입지 못했다."

멤피스의 또 다른 명소는 ‘국립인권박물관’이다. 이곳은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했던 로레인 모텔 건물을 보존하고 증축해서 만들어졌다.
미국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흑인 노예로부터 시작되는 인권문제다. 종교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바탕으로 건국했던 미국은 많은 주에 인권박물관을 세웠다. 그리고 흑인 노예, 여성, 이민자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기록, 전시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전시가 특이한 점은 인권과 관련된 역사를 사건이 발생했던 공간별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미국으로 끌려왔던 노예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탑승한 노예선부터 시작된다. 학교에서의 인종 분리수용에 대한 위헌 결정을 선언했던 미연방최고법원의 실내도 복원시켰다. 버스 내부의 좌석차별배치에 항의했던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도 실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제작해서 연출해 놓았다.



전시는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했던 로레인 모텔의 306호실에서 끝난다. 당시 방의 가구와 텔레비전, 재떨이 등이 고스란히 보존 되어있다. 국립인권박물관의 다양한 공간들은 지난 수백 년간 펼쳐진 인권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통해서 인종, 계급, 성별 등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글로벌 시대의 인권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립인권박물관 National Civil Rights Museum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며, 나체즈
미시시피주의 나체즈는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1716년 프랑스의 식민지로 미시시피 강변에서 전략기지의 역할을 했고, 관광지로 잘 알려진 뉴올리언스와 제일의 항구도시 패권을 다투었다. 또한 남부에서 두 번째로 큰 노예시장이 있어서 그 노예들의 노동을 기반으로 담배, 목화,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며 발전했다. 그 덕에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에서 가장 백만장자가 많은 도시’의 영광도 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파리가 독일군에 의한 도시의 폭격을 막기 위해서 바로 항복했듯이, 나체즈도 남북전쟁 당시 아름다운 도시를 보존하기 위해서 북군에게 바로 항복했다. 하지만 패전 이후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 물류의 주 운송수단은 나체즈를 기착지로 미시시피 강을 따라 운항하던 증기선이었는데 남북전쟁 이후 열차로, 그리고 후에 자동차로 대치되었다. 또 많은 농장과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도시가 쇠락했다. 현재는 다운타운에 몇몇 호텔과 살롱이 남아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를 상상하게 하며, 과거의 부를 상징하는 맨션들이 남부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연간 70만 명 정도의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체즈를 비롯한 많은 남부의 도시들은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경축하지 않는다. 1863년 7월 4일 빅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이 북군에게 항복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7월 4일은 독립기념일이 아닌 패전일이다. 이 뿌리 깊은 경계와 장벽은 우리가 잘 모르는 또 하나의 미국을 이야기한다.



플로리다에서 느껴보는 나폴리, 네이플스
남부에 나체즈처럼 심각한 스토리를 담은 장소나 쇠락한 도시만 있는 건 아니다. 미 대륙 오른쪽 귀퉁이의 꽁지처럼 튀어나온 플로리다주에 ‘네이플스’라는 도시가 있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불리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미국식 발음이다. 반도 서남쪽 도시의 위치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듯한 기후와 아름다운 바다를 갖춘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 네이플스는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정착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날씨가 좋은 만큼 LPGA골프대회가 매년 열리고 해양스포츠와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은퇴자들의 도시라고 하지만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산업은 충분하다. 인테리어, 갤러리, 부티크, 꽃집 등이 많고, 부동산 개발과 의료, 조경, 반려동물 산업도 크게 발달되어 있다. 부지런한 은퇴자들이 많아 마을을 깨끗하게 보존하는 전통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의 방문도 많다. 특히 주변에 섬이나 습지, 늪이 많아 악어와 같은 동물, 열대 식물과 환경을 둘러보고 조개잡이를 즐기는 생태관광이 큰 인기다. 멕시코 만으로 저무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더 이상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 은퇴자들을 위한 레스토랑도 7백여 개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네이플스라는 도시의 이름 때문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많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작명(作名)은 운명(運命)을 정하기도 한다. 여기 사람들은 정말로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같은 낭만적인 휴양도시를 꿈꾸며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2023-07-01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다.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서울의 ‘민가다헌’ 뉴욕의 ‘프레임 카페’와 ‘곳간’을 디자인했다. 저서로는 《천 번의 아침식사》 《공간미식가》 《뉴욕 아이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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