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Road

전라남도 여수

글 _ 장홍석 / 사진 _ 장서우

걷고 싶다
이 바다를 이 거리를



 

‘여수’를 듣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들은 뻔하다. 가수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첫 번째일 테고, 그나마 여수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엑스포를 함께 떠올렸을 것이다. 단, 뭐를 떠올렸건 상관없이 여수가 최근 몇 년간 큰 인기를 끈 여행지라는 사실엔 다들 공감할 테다. ‘여수 밤바다 그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가 대체 무엇이길래, 대체 왜 많고 많은 바다 중에 ‘이 바다를, 이 거리를 너와 걷고 싶다’고 노래 부르는 걸까.




 

 

여수해양레일바이크는 여수엑스포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레일바이크 앞으로 향하면, ‘바다에 왔구나’를 느끼게 해줄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코끝을 찌른다. 레일바이크는 왼편에 푸른 바다를 끼고 왕복 30분 정도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반환점을 향하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발을 구르지 않아도 브레이크를 수시로 잡아야 할 만큼 꽤 빠르게 지나간다. 시야에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들 덕에 눈이 즐겁다. 단, 여수의 탁 트인 바다를 만끽하는 건 이때뿐이다. 반환점을 마치는 순간 내리막의 즐거웠던 기억을 토해내라는 듯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분명 이 길이 그 길인데, 좀 전에 즐겼던 바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왠 고철덩어리 철길만 눈에 들어온다. 때문에 혼자 여행을 갔다면, 레일바이크는 그날의 여행 계획을 다 꼬아 버릴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던 친구던 연인이던, 꼭 누군가가 함께 힘을 더해줘야 한다. 허나 요즘같이 선선한 날씨엔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확실한 건 내리막의 즐거움만을 따질 경우, 여수의 바다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으로 꼽을 만하다.

 


 

레일바이크 바로 위에는 만성리검은모래해변이 있다. 발이 푹 빠지는 모래사장 대신 검은색의 작은 돌멩이들이 잔뜩 깔려있다. 별로 특별할 게 없는 해변이지만, 젖은 발에 모래가 들러붙는 게 싫던 필자는 ‘여름에 물놀이 장소로 제격이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찍는 인증샷처럼, 두 손 가득 돌멩이를 담아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좋겠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들이 그러하듯, 여수에도 벽화마을이 존재한다. 고소동 벽화마을은 1구간부터 9구간까지 아기자기한 벽화가 펼쳐져 있다. 그동안 필자가 가봤던 여러 벽화마을의 그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3구간은 조금 특별하다. 여수 출신 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작품들이 마을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냥 멋진 그림과 ‘내가 아는’ 멋진 그림은 분명 느껴지는 바가 다르다. 훨씬 색감도 예쁘고 화려한 벽화들이 많지만, 3구간의 그림이 가장 반갑다. 〈수요미식회〉의 원조 격인 《식객》, ‘왜 여기까지 왔셩~?’ 저팔계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날아라 슈퍼보드〉 등 거리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고소동 벽화마을을 내려와 해안가를 거닐다 보면, 저 멀리 빨간색 등대가 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멜표류기》의 하멜이 여수에 머물던 시간을 간직한 하멜등대가 주인공이다. 왠지 모르게 감성을 자극하는 ‘빨간색 우체통’과 비슷한 색감의 등대가 매력적이다. 물론 멀리서 봤을 때 말이다. 등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은 탄식이 터진다. ‘꼭 저 글씨체여야만 했을까’라는 아쉬움과 함께. 하필 ‘하멜등대’라는 네 글자를 사방으로 적어놔, 빨간 등대의 감성을 방해한다. 다행히 등대를 중심으로 바라본 여수의 풍경이 하멜등대 글씨체의 아쉬움을 만회한다. 등대 위로는 케이블카가 지나고, 바로 앞 선착장에는 수많은 어선들이 만선을 꿈꾸며 정박해 있다. 저 멀리에는 방금 전 둘러본 고소동 벽화마을도 보인다. 단순히 하멜등대만을 보기보단, 등대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여수의 감성을 느껴본다는 마음으로 들러보는 게 좋겠다.



 

여수는 유독 공원이 많다. 여수해양공원, 남산공원, 봉산공원, 웅천못공원 등. 그중 단연 특별한 공원을 꼽자면 돌산공원과 자산공원을 꼽을 수 있다. 두 공원 사이는 여수 관광의 핵심, 여수해상케이블카가 지난다.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일반적인 케이블카와 발 밑이 투명해 아찔함을 더한 크리스탈 케이블카가 운행 중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마음으로 크리스탈 케이블카에 올랐다. 땅 위에선 거대하게 느껴졌던 언덕과 집, 선박들이 마치 작은 블록 장난감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잘 모르는 ‘바닷속’ 보단 너무 잘 아는 ‘현실’의 두려움이 더 큰 걸까. 깊은 바다 위를 지날 땐 별 느낌이 없다가도 오히려 눈에 익숙한 마을의 풍경을 지날 땐 아찔함이 느껴진다. 어찌됐든 여행객들의 필수코스임을 인증하듯, 케이블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도심에서 즐겼던 케이블카와는 분명 다르다. 개인적으론 빽빽하고 화려한 빌딩 숲을 지나는 도심의 케이블카와 달리, 소박하더라도 바다, 산, 사람 그리고 여기에 시선의 여백을 더한 여수의 케이블카가 훨씬 더 기억에 남았다.
케이블카의 한쪽 꼭지점에 자리잡은 돌산공원에서는 잠시 산책을 즐기기 좋다. 여수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나무데크로 조성된 전망대에 잠시 몸을 기대어 보자. 지나가는 어선이 둥근 물결 그림을 그려내고, 이에 맞춰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새들이 운다. 해가 안녕을 고하고 어스름이 지자, 푸른 바다와 붉은빛이 어우러져 분위기를 잡아준다. ‘아! 이 맛에 이 바다를, 이 거리를 걷는구나’를 느낀다.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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