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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3D 프린터’

글 _ 공병훈(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 일러스트 _ 이혜헌



 

무엇이든지 만들어내는 산타크로스 머신

3D 프린터는 3차원 설계도 파일을 통해 3차원 물건을 입체적으로 인쇄하는 기계다. 장난감과 캐릭터 상품, 문화재나 예술품 복제, 뼈와 신체 부분 등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설계와 컴퓨터 작업으로 작동하는 3D 프린터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은 끝이 없어 보인다. 3D 프린터를 ‘무엇이든지 만들어내는 산타클로스 머신’이라고 부르며 전문가들이 “산업 전반의 4차 산업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D 프린터는 디지털로 제작된 설계도 파일(모델링)에 기반해 특수 고분자 물질이나 금속 가루를 뿌려 재료를 층층이 쌓고, 자외선이나 레이저를 사용해 재료를 굳힌다(프린팅). 거기에 사포로 연마하거나 색칠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마무리한다(후처리). 3D 프린팅은 이러한 관련 기술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된다. 초창기에는 재료가 주로 플라스틱이었지만 점차 종이, 고무, 식품, 금속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또한 재료들을 쌓아서 만드는 방식뿐만 아니라 커다란 합성수지를 둥근 칼로 깎아서 만드는 방식도 있다.
전통적 제조업에서는 틀이 되는 금형(金型)에 액체로 용해된 금속을 넣고 굳혀 제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금형을 만드는 과정이 생략되어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다. 더불어 큰 비용 없이 견본 제품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실질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얻는 것은 물론 최종 생산 제품의 높은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미 많은 제조 업계에서는 시제품 제작에 3D 프린터를 활용하고 있다.
3D 프린터는 개인 맞춤형 제조업의 발달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기에게 맞지 않는 기성품을 구입해 그 기성품에 맞춰 생활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본인에게 맞는, 본인만의 장치와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체형이나 취향에 딱 맞는 제품들을 예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개인화된 맞춤형 상품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제조업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 3D 프린팅은 3차원 설계도 파일에 기반하여 3차원 물체를 인쇄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과 소비 체계의 변화를 이끄는 3D 프린터

3D 프린터는 3D 시스템즈(3D Systems)의 창업자인 척 헐(Chuck Hull)이 1986년에 최초의 3D 프린터인 ‘SLA 1’을 내놓으면서 탄생했다. SLA는 척 헐이 액체를 굳혀가며 쌓고 첨가한다는 뜻으로 만든 용어인 ‘스테레오리소그라피(Stereolithography)’에서 따왔다.
그는 1983년에 3차원으로 물건을 프린팅하는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다. 샘플을 좀 더 싸고 빠르게 만들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려는 의도였다. 이는 이제까지의 표준화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체계가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와 주문에 기반한 다품종 소량 생산, 소비 체계의 변화를 예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는 3D 프린터에 대해 “제조업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3D 시스템즈의 3D 프린터로 금속을 조형하는 특허가 2014년 2월에 끝나면서 세계적으로 다양한 기술과 형태의 개발이 폭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초창기 20만 달러에 달하던 3D 프린터가 1000 달러에 판매되고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3D 프린터를 사용하고 있다.
3D 프린팅 시장은 개인용과 산업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산업용 3D 프린팅 시장의 규모는 개인용에 비해 약 18배 이상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2025년 총 시장 규모는 약 230~550억 달러로 내다보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소비 패턴의 변화, 창업의 활성화, 신제품 및 서비스 창출, 생산성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공유 플랫폼에 기반해 성장하는 3D 프린터 생태계

미래학자들은 “3D 프린터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주장한다. 제조업과 정보통신 기술(ITC)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전혀 새로운 생산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3D 설계도 파일을 편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스케치업(Sketchup)을 개발해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스케치업의 데이터 플랫폼인 3D 웨어하우스 등에서 다양한 설계도를 무료로 다운받거나 자신이 직접 설계도를 만들어 3D 프린터로 물건을 제작할 수 있다. 설계도를 다운받은 소비자는 자신의 습관과 체형, 그리고 미적 취향에 맞게 설계도를 수정할 수 있다. 자신이 제작한 설계도 역시 플랫폼을 통해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
아이튠즈와 구글플레이에서 음악이나 게임 앱을 다운로드하는 방식처럼 유료로 3D 설계도를 판매하는 사이트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 사이트를 통해 설계도를 구매해 세계 어디서든지 완구나 문구, 복제 문화재, 장식품 등을 3D 프린터로 제작할 수 있다. 제조업체들은 상품설계가 바뀌더라도 생산라인을 교체하지 않는 ‘설계 혁명’ 시대를 맞을 것이다.
전 세계 언제 어디서나 3D 프린터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선박이나 기차로 부품과 제품을 이동할 필요가 없는 ‘유통 혁명’도 시작되고 있다. 설계도 파일은 컴퓨터를 통해 편집된다. 때문에 비교적 용이한 작업을 통해 설계 파일이 끝도 없이 새롭게 변형되어 창조되고, 무수하게 쏟아져 나올 수 있다. 누구나 손쉽게 기술을 배워 언제 어디서나 전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의 민주화(democratizing creativity)’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료 분야에서 수술에 앞서 뼈나 장기, 의수와 의족, 치아, 신경 등을 프린팅하고 세포를 배양해 3D 프린터로 인쇄하고 이식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3D 프린터의 악용과 한계 그리고 미래

반면 어두운 전망도 있다. 3D 프린터로 온갖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5월 4일 미국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Defense Distributed)라는 회사가 3D 프린터로 제작한 권총의 시험 발사를 성공시켜 설계 도면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미국 국무부가 설계 도면의 공개를 금지했지만 이미 다운로드 횟수가 10만 건을 돌파한 후였다.
또한 3D 프린터는 갈수록 복잡한 기능으로 진화하겠지만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3D 프린터의 출력 속도가 너무 느리고 구현할 수 있는 소재도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카본3D(Carbon3D) 사는 CLIP(Continuous Liquid Interface Production)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기존 3D 프린터보다 25배에서 100배 정도 빠르게 출력하는 혁신을 이뤘다. 미세한 두께의 단면을 얻어낸 후 이를 연속적으로 적층하는 광조형(Photo Fabrication) 방식으로 속도를 개선한 것이다. 새로운 소재도 계속 개발되고 있다. MIT 연구팀은 고열을 감당할 수 있는 카트리지를 개발해 3D 프린터로 유리그릇을 만들고 있다.

3D 프린팅은 다품종 소량 생산과 개인 맞춤형 제작에 용이하다. 규모의 경제와 저임 노동비 우위를 가진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생산 · 유통 · 소비 방식을 낳고 있다. 3D 프린터는 시제품의 제작 비용 절감 및 시간 단축, 다품종 소량 생산, 제조 공정 간소화 등 장점이 많다. 이미 벨기에의 인테리어 제품 업체인 머티리얼라이즈(Materialise)의 생산 라인에는 주물 제작 설비나 절삭 기계, 조립 로봇이나 기술자들 없이 수십 대의 3D 프린터가 줄지어 놓인 채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척 헐의 말처럼 ‘제조업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조업 노동자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아있다.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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