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INEMA

‘로봇’에 대한 시선 〈리얼 스틸〉 VS 〈터미네이터〉

글 _ 정현목(중앙일보 기자)


 

로봇을 소재로 했거나, 로봇이 등장한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중 로봇에 대한 시선이 대척점에 서 있는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어쩌면 로봇을 바라보는 우리 인류의 인식이 양 극단에 있는 두 영화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먼저 〈리얼 스틸(2011, 숀 레비 감독)〉이다. 이 영화는 로봇 격투기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SF 블록버스터다. 배경은 2020년, 인간들끼리 치고받는 권투에 식상해진 사람들이 보다 화끈한 로봇 격투기에 열광하는 시대다. 주인공은 챔피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전직 권투선수 찰리 켄튼(휴 잭맨)이다. 지하 복싱세계를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그는 고철 로봇으로 로봇 격투기에 출전하며 재기를 꿈꾼다.
어느 날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 맥스(다코다 고요)를 임시로 떠맡게 된 그는 맥스가 우연히 발견한 고철로봇 ‘아톰’을 최고의 격투로봇으로 키워내기 위해 훈련에 돌입한다. 최고의 로봇파이터로 조련된 아톰은 마침내 세계로봇격투대회에 출전, 패배를 모르는 챔피언 로봇 ‘제우스’와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관중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사각의 링 위에서 펼쳐지는 로봇들의 격투신 못지않게 인상적인 건, 오래 떨어져 사는 바람에 서로에 대한 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이 교감을 나누며 관계를 회복해가는 과정이다. 교감의 중심에 서있는 매개체는 바로 고철로봇 아톰이다.
아톰과 같은 격투로봇은 자신의 고유한 의지가 없다. 인간이 조작하는 리모컨 또는 인간의 음성인식을 통해 움직인다. 전원이 꺼져있으면 커다란 기계덩어리에 불과한 로봇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건 인간이다. 영화에서 동작인식 기능을 통해 맥스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며 힘차게 주먹을 내뻗는 아톰의 모습은 인간과 로봇의 주종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의 격투신 만큼 로봇의 움직임이 정교하거나 박진감 넘치진 않지만, 로봇 격투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주인인 인간을 위해 철저히 복무하며, 주인에게 막대한 부까지 안겨주는 격투로봇은 인간의 편익을 위해 도구로서 만들어진, 로봇의 원초적 개념에 부합하는 존재다.
반면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로봇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영화가 〈터미네이터(1984, 제임스 카메론 감독)〉다. 1984년 시리즈가 시작돼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주되며 만들어지고 있는 이 영화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작품이다. ‘터미네이터’가 설정한 미래는 인류를 파멸의 위기에 몰아넣은 핵전쟁 이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다(사실 핵전쟁 또한 인류를 멸망시킬 목적으로 로봇이 일으켰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저항군을 결성해 로봇과 싸운다. 전투력 면에서 로봇과 비교가 안되지만 저항군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에 로봇은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의 존재 자체를 없애기 위해 타임머신을 이용, 암살로봇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낸다.
이를 알게 된 미래의 존 코너 역시 어린 자신을 지켜 줄 보호자를 과거로 보내면서 죽이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간의 추격전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속편들에서 훨씬 업그레이드된 최첨단 로봇 터미네이터가 등장해 주인공을 위협하지만, 쫓고 쫓기는 이같은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처음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큰 충격에 빠졌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로서, 언제까지나 인간을 위해 봉사할 줄로만 알았던 로봇이 인간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갖게 돼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가능성을 영화가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로봇 · 인공지능 기술이 점차 빠른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2045~50년 즈음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능력을 앞지르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어떤 것도 단언할 순 없지만 여러 학설과 논란 속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차츰차츰 인간의 자리를 대체해나갈 것이란 사실이다. 이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며 떠올린 흥미로운 상상 하나. 사무실 옆 자리의 똑똑한 인공지능 동료가 꿀 성대와 독특한 유머감각까지 장착해 회사 내에서 ‘핵인싸’가 되고, 신체적 결함으로 고민하던 인간 동료가 어느 날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자신의 몸을 보완 · 개조한 뒤 매끈한 사이보그 같은 모습으로 출근한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그런 이분법적 구분조차 의미 없어지는 시대, 그때가 되면 인간만이 지구의 유일한 지적 존재이자 주인이라는 생각은 케케묵고 오만한, 시대착오적 관념이 될 듯하다.

201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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