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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소셜 미디어 세상 〈백설공주 살인사건〉

글 _ 정현목(중앙일보 대중문화팀 기자)


 

SNS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는 시대다. ‘카페인 중독증’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를 커피나 홍차의 과다 섭취로 이해했다면 스스로 구세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카페인은 카카오톡 플러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뜻한다. SNS에 접속해 타인들과 소통하지 않고선 잠시도 견딜 수 없는 중독 수준의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중독증 말고도 SNS가 초래하는 사회적 폐해는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2014,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무책임하게 퍼 나르는 거짓 이야기들이 선량한 개인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온라인 마녀사냥의 폐해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베스트셀러 소설 《고백》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백설공주’라는 비누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미모의 여직원 노리코(아라이 나나오)가 어느 날 숲 속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사건을 접한 TV 계약직 조연출 유지(아야노 고)는 비누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사건 이후 며칠째 연락두절인 회사 동료 미키(이노우에 마오)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유지는 잠시라도 트위터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열혈 트위터리안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고용상황 때문에 늘 실적에 목말라하던 그는 이 사건을 취재해 대박을 터뜨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들떠 사건을 파고든다.

피해여성 노리코의 동료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미키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유지는 열혈 트위터리안답게 취재 내용을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린다. 뿐만 아니라 미키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정황과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을 자극적으로 편집한 방송을 내보낸다. 그의 취재 내용은 순식간에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다.

미키를 범인으로 모는 방송이 시청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자, 유지는 우쭐해진다. 반면 미키는 실명과 고향, 출신학교 등의 개인 정보가 까발려지는 이른바 온라인 신상털기를 당하며 궁지에 몰린다. 그러던 중 유지가 의문의 한 시청자로부터 ‘당신의 방송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항의편지를 받으며 전개는 급반전된다.

이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누가 미모의 여직원 노리코를 죽였는지, 노리코는 왜 그렇게 무참히 살해당해야 했는지가 아니다. 영화는 노리코의 회사 동료인 미키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살해 용의자로 몰려 SNS에서 난도질 당하고, 매체들이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시청률이란 달콤한 유혹의 포로가 된 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는 모습을 통해 현대판 마녀사냥의 잔인한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한 여성이 순식간에 악마 같은 존재로 낙인 찍히고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들로 인해 어릴 때의 행적과 사생활까지 심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온라인 여론이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한 개인의 인간성을 파괴할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백설공주 살인사건〉이 SNS 요소를 영화 속에 적극 끌어들였다는 점도 독특하다. 유지가 트위터를 통해 사건과 관련한 가십을 쏟아내고, 이에 동조한 네티즌들이 범인을 추측하는 글을 끝없이 올리는 ‘루머의 확대 재생산’과 그 결과로 초래되는 특정인에 대한 ‘마녀사냥’ 과정을 SNS 실시간 화면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진실은 실종되고, 자극적인 루머와 뒷담화만이 난무하는 트위터 창을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세 마디 손가락으로 한 인간의 존엄성과 삶 전체를 파괴시키는 영화 속 네티즌들이 바로 당신, 아니 우리 모두일 수 있다는 엄혹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실제로 온라인의 익명성 뒤에서 근거 없는 인신공격성 악성 루머가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반드시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피해자만 남게 되는 일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목격해오지 않았나.

참으로 안타깝지만,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 나는 세상이 됐다. “사람의 기억은 날조돼. 인간은 자기한테 유리하게끔 이야기를 하거든. 그러니 정작 중요한 걸 놓치지마”라는 대사가 너무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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