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국’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슈퍼 히어로’나 ‘청바지’? 혹은 ‘대통령’을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세계 최초 대통령 타이틀을 가진 워싱턴부터 노예 해방의 링컨, 제46대 대통령 바이든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미국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볼 수 있죠. 그런 미국에 황제가 있었다는 사실! 상상이 가시나요? 믿거나 말거나 미국에도 한때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다양한 정책을 펼쳤던 성군이 있었답니다.
글 _ 이주은(《스캔들 세계사》의 저자)

세계 연합을 꿈꿨던
미국의 황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개방적인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대게 남들과 다른 개성을 빠르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고 다르기에 더 멋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죠. 그런 샌프란시스코에 혜성같이 나타난 괴짜가 바로 ‘자칭 황제’ 노턴 1세입니다.
 

라떼는 말이야 꽤 잘 나갔었다고!

1818년에 런던에서 태어난 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은 30살이 되던 해 부모로부터 4만 달러라는 큰 유산을 받아 미국으로 오게 됩니다. 유산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재산을 크게 불렸죠. 하지만 좋았던 시기는 잠시, 노턴의 삶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1853년 중국 정부는 가뭄으로 쌀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 이에 샌프란시스코의 쌀 가격도 무려 9배나 폭증했습니다. 그 무렵 노턴은 페루에서 쌀을 수입해 비싸게 팔면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에 쌀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노턴만 했던 건 아니었죠. 머지 않아 쌀을 실은 많은 선박들이 미국에 속속 도착하면서 노턴은 파산하게 됐습니다. 엄청난 부자에서 빈털터리로 추락해버린 노턴은 그때부터 미국의 법과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정부에 많은 불만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특이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미국의 황제다

1859년 9월 17일, 노턴은 자신 스스로를 미합중국 황제로 임하는 기고문을 신문에 발표합니다.



 

정말 뜬금없죠? 만약 지금 누군가가 이 글을 신문에 실어달라고 하면 무시할 법한 내용이지만 당시 다룰만한 특종이 없어 지루해하던 언론사는 이 글을 무려 1면에 실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노턴의 21년간의 미국 통치(?)가 시작됐습니다. 스스로 황제가 된노턴은 이후 많은 칙령과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노턴을 긍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특히 노턴이 ‘부정부패가 전국에 만연하니 미국 정부를 해산하라’고 명령하고 직접 정사를 돌보겠다고 했을때 시민들은 환호했고, 노턴은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노턴의 국민이기를 자청한 당시의 사람들은 노턴과 철학,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주제로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하루는 멕시코의 불안정한 상황을 두고 한 사람이 노턴에게 “전하가 아니면 누가 멕시코를 수호하겠나이까!”라고 외쳤고 그 뒤 노턴은 일명 ‘멕시코의 수호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면 뛰어난(?) 군주

단순히 특이해서 인기가 많았던 걸까요? 사실 노턴과 관련된 일화나 그가 주장한 정책, 사람들을 위해 한 활동 등을 보면 그는 꽤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노턴은 매일 도시를 돌며 민원을 경청했고 공공기물 등의 상태와 경관들의 태도까지 점검했습니다. 종교적 화합을 위해 다양한 종교를 경험한 것은 물론, 국제연합(지금의 UN)의 필요성도 피력했죠. 노예제도가 합법이던 시절임에도 노턴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말뿐인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폭행당하는 중국인을 직접 보호하는 등 행동으로 실천했다고 하니, 그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앞서 나간 사람 아닌가요? 또, 그는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다리(지금의 베이브리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했는데, 훗날 1939년 실제 그 다리가 완공될 때 노턴의 공헌을 기리는 동판이 만들어지기도 했답니다.
 

 

충성스러운 그의 국민들

황제를 자청했던 노턴은 사실 늘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국민들은 노턴을 물심양면 챙겨주었죠. 황제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으며 연극과 공연에는 꼭 그의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시 의원회에서는 맞춤옷을 바치기도 했죠. 이에 감격한 노턴은 그들에게 귀족 작위를 내렸습니다. 심지어 사람들과 은행으로부터 세금을 받기까지 했다는데요. 당시 은행이 기꺼이 세금을 낸 것도 신기하죠? 이런 상황에서도 늘 돈이 없어 힘들었던 노턴은 직접 화폐까지 발행합니다. 이 화폐는 일반 시민들도 돈으로 이용했습니다. 관광객들은 노턴에게 달러를 주고 환전을 하기도 했죠. 당시 노턴은 사람들에게 이 돈을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거라 약속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오늘날 수집가들에게 없어서 못 구하는 아주 희귀한 화폐가 되었다고 합니다.
 


Le Roi est Mort!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노턴은 1880년, 강연을 가던 길에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Le Roi est Mort!(왕께서 승하하셨다!)”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었는데 노턴의 죽음을 다룬 기사들에서는 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초라한 방과 허름한 옷 몇 벌 밖에 없던 노턴을 위해 시에서는 장례 비용을, 사업가 협회에서는 고급 관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인구수가 23만이었던 도시에서 노턴의 장례식 조문객은 무려 3만 명이었다고 해요. 1980년에는 노턴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다면, 화려한 베이브리지의 야경을 보며 사랑받았던 황제 노턴
을 떠올려 보세요. 물론, 보다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말이죠. 과대망상에 걸린 환자로 보였을 수도 있는 그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온정을 베풀었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배려와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2022-05-02

이주은: 포털 사이트에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며 ‘동화보다 재미있는 세계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방문자 600만 명의 파워블로그와 ‘눈숑눈숑 역사탐방’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작은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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