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 KIT

아이디어에 바람직한 역경 약이 되는 제약

‘역경에 처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좋은 약이 되고 행동이 단련된다. 만사가 잘 풀릴 때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흉기가 되고 살이 녹고 뼈가 깎여도 깨닫지 못한다.’ 역경에 대한 채근담의 구절입니다. 아이디어를 펼칠 땐 제약이 없어야 하지만 아이디어가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선 그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약이 되는 ‘제약’에 대해 알아봅시다.
글 _ 신호진 (책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의 저자)

새 프로젝트의 담당이 된 여러분은 각고의 노력 끝에 굉장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한데, 그 아이디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사용 범위나 필연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제약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대게 새로운 아이디어는 ‘예산’이나 ‘실현 가능성’ 등의 제약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이런 제약은 오히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아래의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풀어봅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번 질문의 답으로 10센트, 2번은 100시간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보면 정답은 각각 5센트, 5분입니다. 이 두 문제는 예일대학교 교수 셰인 프레데릭이 고안한 지능 검사입니다. 프레데릭 교수는 이 질문으로 충동적인 대답이 아닌 분석적이고 깊이 있는 판단 능력을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간단하게 점수를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애덤 알터와 대니얼 오펜하이머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학생들에게 위의 문제를 아래처럼 보여줬습니다. 글자의 색상을 흐리게 하고, 크기를 줄여 잘 보이지 않게 말이죠.



 

학생들은 문제가 잘 보이지 않자 훨씬 더 많이 맞췄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보통 문제가 명확하게 제시되었을 때 더 잘 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문제를 읽기 어렵게 만들었더니 점수가 높아졌습니다. 가독성이 낮은 문제를 읽는 동안 더 많은 집중력을 사용했고, 그 덕에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역경이 오히려 사람들을 빛나게 하는 경우도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장애물이 우리를 힘들게 할수록 더 깊이 있고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제약은 사실 깊이 있는 아이디어 탐구를 위한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예산 부족을 극복하다

수많은 맥주 브랜드가 뮤지션들을 지원하거나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들입니다. 다양한 행사를 후원해 브랜드를 부각하는 것이죠. 반면 버드와이저는 많은 뮤지션들의 사랑 덕에 굳이 그들을 공식적으로 후원하거나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도 홍보효과를 누렸습니다.
 

 

  

버드와이저는 저비용 고효율의 홍보효과를 누리기 위해, 유명한 뮤지션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그 시간, 장소에 버드와이저를 즐겼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한데 뮤지션들의 사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려면 초상권과 저작권 등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죠. 그래서 사용자들이 구글 검색을 통해 사진을 찾아보도록 하는 ‘TAGWORDS’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1969 Musicians Sessions Budweiser’라고 검색하면 롤링스톤즈의 멤버들이 버드와이저를 들고 있는 사진이 나옵니다. ‘1987 California Hip-hop Budweiser’라고 검색하면 비스티보이즈가 공연에서 버드와이저를 관객에게 뿌리는 사진이 등장하죠. 검색어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원하는 장면이 먼저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특정 이미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제한된 상황에서 사용자가 직접, 그리고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입니다.

공간의 제약을 이용하다
공간의 제약을 멋지게 활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독일의 함부르크 공항에서 진행된 ‘BMW M3 Coupe’의 옥외광고입니다. ‘EXCEED MAXIMUM(최대치를 넘다)’이란 단어를 반으로 쪼갠 뒤 가로 50m, 세로 2m의 라이트월 바닥에 반사했습니다. 최고를 뛰어넘는다는 BMW의 제품 메시지를 전달하고 기존 라이트월 크기 2배 이상의 광고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공간의 제약을 활용한 다른 브랜드론 데오도란트 ‘링스(Lynx)’가 있습니다. 링스는 코로나로 인해 야외 활동이 줄어들자 인플루언서들을 대상으로 ‘Indoor Ads’ 마케팅을 진행했습니다. 링스의 한정판 굿즈를 인플루언서들에게 전달하고, 인플루언서들이 오직 자신의 집에서만 굿즈와 함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포스팅할 때마다 20~70파운드의 현금을 지급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사진을 찍을지는 인플루언서들의 아이디어에 달려있죠. 일상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여러 사람에게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야외활동을 위해 고안된 데오도란트를 집에서 홍보한 역발상은 코로나 시대의 아이디어로 주목할 만합니다.
 



세대의 한계를 뛰어넘다

오래된 브랜드는 새로운 세대에게 리브랜딩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MZ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다른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곰표’입니다. 밀가루 포대에서나 볼 수 있던 곰표의 로고를 MZ세대가 즐기는 화장품과 맥주에 적용한 건 이미 유명한 예시입니다. 과연 그 시작은 어디부터였을까요? 곰표는 2030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밀가루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에 곰표라고 답한 사람이 5명 중 1명에 불과했죠. 이때 한 의류 브랜드가 곰표의 로고를 무단도용해 티셔츠로 판매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곰표는 이 의류 브랜드를 신고하는 대신 마케팅 기회로 삼아보기로 했고 이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곰표 맥주는 올해 5월 국내 브랜드들을 제치고 편의점 매출 1위를 기록했습니다. 곰표는 패션, 식품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 접목됨으로써 69살이 된 브랜드가 20대가 찾는 브랜드로 완벽하게 변신했고 콜라보 트렌드의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효율성의 대명사였던 노키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용 절감을 시도합니다. 조명 개수 줄이기, 값싼 휴지로 교체, 식당에 휘핑크림 없애기 등의 노력을 기울였죠. 한데 이런 눈물나는 노력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전 세계 언론은 ‘값싼 휴지’와 ‘휘핑크림 없애기’와 같은 노키아의 조치를 두고 조롱이 담긴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실제로 비용 절감 효과는 미미했고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나 몰입도는 떨어졌습니다. 아마도 비용 절감이라는 가시적인 목표에만 치중했기 때문이겠지요.
제약과 역경에 부딪쳤을 때, 아이디어를 제거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휘핑크림을 없애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주변의 것들로 좋은 대안을 만들 수 있는 ‘바람직한 역경’을 기억합시다. 제약을 발판 삼아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발휘해보세요.

2021-11-01

신호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L기업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 3개 디자인 공모전IF Design Award, Red dot Award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 《디자인씽킹 for 아이디어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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