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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율효과와 타이포그래피

‘태정태세문단세~’ 학창 시절 어려운 내용을 외우려고 노랫말에 맞추어 불러본 적이 있나요? 또, 헷갈리는 영어 단어를 그림 그려가며 암기한 적 있나요? 분명 훨씬 더 기억하기 쉽고 머릿속에 오래 남았을 겁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비장의 무기! ‘운율효과’와 ‘타이포그래피’를 소개합니다.
글 _ 신호진 (책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의 저자)

말 맛으로 강력하게 각인시키다

운율효과란, 운율에 맞춰 의견을 표현하면 같은 말이라도 사람들이 더 주의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운율을 사용한 메시지가 효과적인 이유는 정보처리의 유연성 때문인데요. 운율, 즉 리듬 때문에 뇌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쉬워집니다. 소위 말의 ‘맛’이 산다고 하죠. 이렇게 유연하게 처리된 정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욱 오래 남습니다. 양경수 일러스트레이터의 ‘실어증, 일하기 싫어증’과 같은 표현도 운율효과의 예입니다. 운율효과를 이용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귀가 즐거운 ‘운율효과’

운율효과를 활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생활용품 브랜드 ‘락앤락(LocknLock)’은 잠그다란 뜻의 ‘Lock’을 두 번 반복하며 절대 새지 않을 것 같은 밀폐용기의 특성을 나타냈죠. 의성어나 의태어의 사용으로도 운율효과를 낼 수 있는데요. 신세계 그룹의 온라인 쇼핑몰 ‘SSG.COM’은 ‘SSG’를 ‘쓱’으로 활용했습니다. 영어 철자 그대로 발음하기 쉽지 않은 SSG를 소비자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제안한 것이죠. 게다가 의태어 ‘쓱’은 빠른 배송을 한다는 브랜드의 특성을 잘 나타냅니다.

“영어 좀 하죠? 이거 좀 읽어봐요.”

“쓱”



실제로 해당 광고 후 SSG.COM의 1~2월 매출은 전년 대비 32% 상승했습니다. 또한, 신규 가입자도 28%나 늘었다고 하니 브랜드 인지도와 광고 효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입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반전 있는 내용을 담아 소비자의 호기심을 이끄는 겁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며 유추하는 과정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죠.

신세계 그룹의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이 오픈할 때 고양시의 발음과 ‘고양이’를 이용하여 ‘언제 올 고양?’이라는 귀여운 카피로 풀어냈습니다. 스타필드가 고양시에 오픈하고, 꼭 방문하라는 두 가지 의미(Double meaning)를 전달하면서 재미 요소를 준 사례입니다.

  

 

‘구글’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광고로 검색 기능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보여줬습니다. 해당 광고에는 우주 한가운데 땅콩이 서 있습니다. 하단에는 ‘Did you mean? Astronaut’라고 쓰여 있죠. 본래 ‘Astronaut’는 ‘우주 비행사’를 뜻하는데 발음이 같은 ‘nut’으로 잘못 검색한 것도 구글이 찾아준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시리즈로는 전투모를 쓴 양이 있습니다. 영화 〈배틀쉽(Battleship)〉에서 발음이 같은 ‘Ship(배)’와 ‘Sheep(양)’으로 재미를 주었습니다. 잘못 검색하더라도 원하는 정보를 딱 찾아주거나 올바르게 교정하여 정확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구글의 장점을 드러낸 광고입니다.

말 맛을 살린 표현들은 소비자들 이목을 끌 수 있습니다. 말 맛을 잘 살리면 맛있는 아이디어가 탄생합니다. 운율을 활용해서 유쾌한 브랜딩을 시도해 봅시다.

  

 

이뿐만일까요? 아마존은 빅데이터로 물류 흐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무료 배송 서비스를 시행하면서 배송이 늘어나자 각 나라의 선호 상품이나 고객 데이터 등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무료 배송은 아마존과 고객 모두에게 이득인 셈입니다.

글자를 디자인하다

글자를 이용한 모든 디자인은 ‘타이포그래피’라고 합니다. 다양한 서체를 이용하거나 글자를 중심으로 구성한 그래픽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캘리그래피도 타이포그래피의 한 영역입니다.


 

위 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죽로지실’입니다. 죽로지실은 형태가 의미와 만나, 글씨가 그림이 되는 추사의 재기를 실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제일 오른쪽 ‘죽(竹)’부터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추사는 ‘죽(竹)’을 곧게 선 대나무와 나부끼는 대나무 잎으로 구성해 꼿꼿하면서 운동감이 느껴지는 글자로 표현했습니다. 화로를 뜻하는 ‘로(爐)’는 다리가 네 개인 화로 위에 찻주전자가 놓인 것처럼 변형했습니다. 이때, ‘화(火)’ 변은 일부러 작게 써 놓아 차가 약한 불로 뭉근히 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세 번째 글자인 ‘지(之)’입니다. 어조사 ‘지’는 큰 의미가 없는데도, 추사는 이 글씨를 변형하여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르게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집을 뜻하는 ‘실(室)’은 윗 변()을 크게 지붕처럼 그리고, 가운데는 둥근 창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죽로지실을 통해 글자를 넘어서서 다실(茶室)에서 즐기는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의 자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이 즐거운 ‘타이포그래피’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먼저 텍스트에 형태를 부여하는 방법입니다. 텍스트가 물리적 형태를 가진다면 독특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물성에 맞는 느낌이 함께 전달됩니다. 그 어디에도 ‘빨리’라는 메시지는 없지만 얼음으로 단 하루 열리는 전시회를 강조한 포스터가 그 예시입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형태의 타이포그래피를 살펴볼까요? 콜롬비아의 주방 제작업체 ‘Hiper Centro’는 신문의 지면을 활용하여 공간감을 표현한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원근감을 준 글자들이 주변과 대비를 이루며 2차원에서 3차원의 주방공간을 완성했습니다.
광고뿐만 아니라, 캠페인에도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0년에 일어난 아이티 강진은 무려 15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재앙이었습니다. 독일의 한 구호단체는 언론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기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독일 내 저명한 저널리스트 및 관계자 500명에게 색다른 우편을 보냈습니다. 봉투를 열면 ‘Deeds, Not Words(말보다 행동으로)’라는 강렬한 카피를 제외하고, 다른 글자들은 우수수 떨어집니다. 글자들이 편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은 대지진을 연상시킵니다. 해당 우편은 관계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으며 5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했습니다.




지나친 꾸밈은 의미 전달을 강조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율효과나 타이포그래피를 잘 활용하면 소비자에게 더 크고 새로운 스토리를 전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운율효과와 타이포그래피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어봅시다.

2021-10-01

신호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L기업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 3개 디자인 공모전IF Design Award, Red dot Award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 《디자인씽킹 for 아이디어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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