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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아이디어 '버려지는 것의 쓸모'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롭고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제품 간의 작은 차이보다 해당 제품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와 명분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언제나 새로운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버려진 것도 좋습니다. 의미(意味)는 미(美)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죠.
글 _ 신호진 (책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의 저자)

  



프레임을 바꾸면 보이는 기회

2011년, 일본 도쿄에 문을 연 ‘마구로 마트’는 종이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참치 전문점입니다. 마구로 마트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참치를 숟가락으로 긁어먹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 가게의 간판 메뉴인 ‘나카오치(참치의 갈빗살)’를 주문하면 40cm 가량의 참치 갈빗대가 통째로 제공되는데, 사람들은 젓가락 대신 함께 나온 숟가락으로 갈빗대의 사이사이를 긁어먹습니다.

이 ‘나카오치’에 대해 먼저 알아볼까요. 참치의 갈빗살은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품성이 떨어집니다. 뼈와 붙어 있어 손질이 힘들고, 손질하더라도 깔끔하게 회를 뜨는 게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식당이 등살, 목살, 뱃살 등을 참치회로 이용하고 갈빗살은 갈아서 참치 덮밥이나 군함 말이 초밥에 사용합니다. 갈빗살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인 셈이죠.
하지만 마구로 마트에서는 상품 가치가 떨어져 버려지거나 사이드메뉴로 활용되던 갈빗살을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 내놓습니다. 게다가 손님들에게 숟가락을 쥐여주고는 손질이 힘든 갈빗살을 직접 긁어 먹게 하죠. 그런데 이게 바로 마구로 마트의 인기 비결이 됐습니다. 손님들은 특별한 경험과 동시에 맛있는 참치 부위를 온전히 맛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륵’이었던 부위는 ‘신선한 체험’이라는 상품 가치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손님들의 흥미를 끌었고 입소문을 탔죠. 결과적으로 참치 갈빗살은 마구로 마트에서 예약해야만 겨우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되었습니다.

 




마구로 마트는 여러 단점으로 인해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갈빗대에 주목했습니다. 손질이 어렵다는 단점은 색다른 ‘체험’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했죠. 마구로 마트는 버려지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여기에 ‘즐거움’의 가치를 더했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관점을 달리하여 버려지는 것부터 주목해 봅시다. 그렇다면 주변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할 테니 말입니다.

가심비를 이끄는 '푸드 리퍼브'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슈퍼마켓 체인 ‘엥테르마르셰(Intermarch)’ 또한 버려지는 것에서 상품성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과일이나 채소를 고를 때 깔끔하고 겉모양이 좋은 것을 선호합니다. 못생기거나 모양이 조금 이상한 과일 혹은 채소들도 맛이나 품질 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말이죠. 엥테르마르셰는 소비자들의 성향 때문에 판매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농산물들이 많다는 점에서 착안해 ‘못생긴 과일과 채소’ 캠페인을 기획했습니다. 그들은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패한 레몬’ ‘우스꽝스러운 감자’ ‘기괴한 사과’ 등 못생긴 과일과 채소에 이름을 붙이고 전용 판매대를 만들었습니다. 못생긴 과일과 채소를 마트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해당 제품으로 만든 주스와 수프를 무료로 제공해 시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

이 캠페인의 효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틀간의 캠페인 동안 판매된 못난이 과일과 채소들은 1.2t에 달했고, 이는 24%의 고객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인식의 개선을 통해 소비자는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사게 되었고, 판매자는 판매의 기회를 얻은 거죠. 엥테르마르셰는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긍정적 인식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는 필환경 시대다

필환경이란 반드시 필(必)과 환경의 합성어로, 요즘 같은 시대에 ‘필수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마구로 마트와 ‘못생긴 과일과 채소’ 캠페인이 버려지던 것들에 가치를 부여했다면, 상품을 사용하고 난 다음 쓰레기가 된 것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든’ 브랜드들도 있습니다. 이를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고 합니다.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Recycle)’을 합친 말로, 버려지는 물품에 디자인 등을 더해 가치 있는 제품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합니다. 필환경 시대에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요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브랜드론 ‘프라이탁’이 있습니다. 
 




프라이탁의 창시자인 마커스 ·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친환경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이동 시 주로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비가 자주 내리는 스위스 취리히의 날씨때문에 방수가 잘되고 튼튼한 가방이 필요했죠. 그래서 내구성과 방수성이 뛰어난 트럭용 방수천 ‘타폴린’을 소재로 한 가방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안전벨트, 폐자전거의 고무 튜브 등을 소재로 하여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이 가방이 프라이탁 브랜드의 시초였죠.

프라이탁은 대부분 5년 이상 사용한 타폴린을 사들여 제작하고 있는데 오히려 새로 주문 · 제작하는 것보다 더 큰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이탁은 업사이클링을 위해 이런 경영 방식을 고수합니다. 또한, 재활용되는 재료에 담긴 스토리가 고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면서 소비자들의 새로운 경험이 더해진다고 말합니다. 모든 제품을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똑같은 디자인이 하나도 없는 것도 특징이죠. 그래서 프라이탁은 밀레니얼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프라이탁 가방을 멘다는 것은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착한 소비를 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프라이탁이 지상 쓰레기를 활용한 사례라면, 해양 쓰레기를 활용한 브랜드도 있습니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지속되는 해양 쓰레기 문제에 관해 캠페인을 펼쳐 왔습니다. 심지어 해양환경보호단체 ‘팔리 포 디 오션스(Parley for the Oceans)’와 함께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을 활용한 러닝화를 출시했죠.



러닝화 한 켤레 당 플라스틱병 11개를 재활용해 신발 갑피, 끈, 발목을 잡아주는 힐 카운터 등에 사용했습니다. 이 재활용 운동화 ‘울트라부스트 팔리’는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착한 운동화일 뿐만 아니라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디자인으로 출시하자마자 한정판 7천 켤레가 모두 소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를 통해 1억 개 이상의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할 수 있었죠.
 




필환경 트렌드 속에서 가치 있는 아이디어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쓸모없다고 외면하던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봅시다. 한데 상품성이 없는 것을 모아서 판매하고, 단순히 업사이클링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브랜드 가치와 감각적인 디자인, 소비자들의 체험이 함께 섞였을 때 새로운 반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야말로, 더욱더 빛날 것입니다.

 

2021-07-01

신호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L기업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 3개 디자인 공모전IF Design Award, Red dot Award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 《디자인씽킹 for 아이디어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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