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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장지를 사재기할까?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 곳곳에서 사재기 대란이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큰 문제없이 지나갔지만, 많은 국가들이 사재기로 애를 먹었다. 특히, 화장지는 가장 인기있는 사재기 품목이었다. 사람들은 미친듯이 화장지를 사 모았고, 이로 인해 화장지의 가격이 꽤 오랜 기간 폭등했다. 대체 왜 사재기를 했던 걸까? 왜 하필 화장지였을까?
글 _ 정인호 대표(GGL리더십그룹)

 

“코로나가 창궐하는데 길가에 화장지가 쌓여 있다니!”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SNS에서 위와 같은 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마트 앞에 잔뜩 쌓인 화장지가 신기했던지 사진을 찍어 올렸다. 우리나라 국민들이야 ‘마트에서 화장지를 파는 게 뭐가 신기해?’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다른 나라는 사정이 달랐다. 미국, 영국 등은 물론이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화장지 사재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특히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불필요한 양의 식품과 생활필수품을 쌓아 놓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을 정도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초기에 사재기 조짐이 있었다. 쌀과 라면, 생수와 통조림 등이 인기를 끌면서 택
배 물량이 급증했다. 만약 이 과정에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도 사재기 열풍이 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든 수요가 원활하게 충족되었고, 사람들은 ‘굳이 쟁여놓지 않아도 언제나 살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사재기는 끝났다.

공급되는 물량이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이 사재기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마스크 사재기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한데, 화장지의 경우는 좀 다르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은 화장지의 재료를 수급하고 공정하는,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수요보다도 훨씬 더 여유 있게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화장지에 매달렸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코로나도 못 말린 일부 소비자들의 명품 사랑은 샤넬에서 정점을 찍었다. 작년 5월 세계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샤넬의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국의 주요 백화점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가격 인상 전에 샤넬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몰린 탓이다. 당시,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개장 전부터 200명이 넘게 줄을 섰고, 다른 백화점들도 긴 줄이 늘어서 장사진을 이뤘다. 코로나 감염이 우려됐지만, 이들에게는 소비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 화장지 사재기의 첫 번째 이유 | 심리적 기제와 행동편향의 오류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국가들이 비상상태를 선포했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게 됐다. 극적인 상황에 맞는 극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데 손만 씻고 있기엔 불안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 작용이나 원리를 ‘심리적 기제’라고 한다.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모종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심리적 기제’가 사재기로 나타난 것이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스마트폰의 배터리는 다 떨어졌고, 여기가 어디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극한의 조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로렌스 곤잘레스는 특정 상황에서 살아남는 사람과 죽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 연구한다. 그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그 자리에 머무르며 힘을 아끼라’고 조언했다. 길을 모른다면, 때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라는 소리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99%의 사람들은 공포심에 빠져 사방을 허우적거리다가 지쳐버린다.
이처럼 불분명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강렬한 행동 욕구를 ‘행동편향’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행동편향을 보이는 인간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 있다.”


| 화장지 사재기의 두 번째 이유 | 심리적 안정감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화장지는 코로나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이나 식료품같이 비상사태의 필수 요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바로,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외출조차 꺼려지는 상황에 강제 ‘집돌이’ ‘집순이’가 된 사람들은 화장지가 집안에 쌓여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이에 대해 조지워싱턴대 매리 알보드 교수는 “휴지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우리는 먹고 자고 배변하는데, 이는 우리 자신을 돌보는 기본 욕구이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제한된 예산으로 다양한 비상 물품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화장지처럼 저렴하고 부피가 큰 물품을 구입하면 보다 큰 심리적 안정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화장지 사재기의 세 번째 이유 | 포모증후군
화장지 사재기의 마지막 이유는 사재기가 또 다른 사재기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별 생각없이 마트에 갔는데 화장지 선반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면 어떨까?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괜히 눈길이 간다. 굳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왠지 사야할 것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안전한 것, 위험한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다 하는데 나만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군중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이라고 한다.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의미한다.
포모증후군을 이야기할 땐 SNS를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SNS 상의 콘텐츠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고 정보를 얻으며, 이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매달린다. 화장지 사재기도 이렇게 퍼져나갔다.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화제가 되고 이 내용이 SNS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사재기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코로나와 같은 재난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욱더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는 FOMO를 JOMO(Joy Of Missing Out)로 바꾸며, 절제를 즐기자고 강조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급함, 과잉 행동에 맞서 ‘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비를 멈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을 쓰더라도 남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맞춤형 소비를 하자. 지금은 남이 아닌 내 삶을 회복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이다.

2021-03-01

정인호: 행동심리와 리더십, 협상 분야의 독보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전문 작가이다. 저서로는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갑을 이기는 을의 협상법》 《당신도 몰랐던 행동심리학》 《HRD 컨설팅 인사이트》 《코로나에 숨은 행돔심리-언택트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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