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 KIT

일상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에스노그라피'

‘보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했던 과거에는,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통해 원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숨겨진 니즈’를 발견해야 성공하는 지금, 색다른 조사 방법이 필요해졌습니다. 고객이 당면한 상황과 전체 맥락, 잠재적 욕구에 대해 통찰하고 아이디어로 연결하는 방법, 에스노그라피에 대해 알아봅시다. 글 _ 신호진 (책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의 저자)

 




설문조사의 실체

한 회사에서 직원들의 업무 의욕을 높이기 위해 100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하고자 위와 같은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번이 채택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즐거움, 맛있는 식사와 멋진 물건을 가장 큰 동기부여로 여긴거죠. 하지만 질문을 살짝 바꾸자,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떤 문구가 당신의 목표 달성 의지를 향상시키나요?’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3번을 꼽았습니다.
이 연구는 설문조사의 허점을 보여줍니다. 질문이 바뀌자, 사람들은 내면의 동기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미지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응답을 선호한 것이죠.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화장실에 다녀온 뒤 손을 씻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사람들이 95%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설문조사를 마친 사람 중 여성의 67%, 남성의 58%만이 화장실을 다녀온 뒤 손을 씻었습니다. 두 가지 사례는 설문조사만으로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6살의 여성이 노인 분장을 한 까닭
한 80대 노인이 있습니다. 이 노인은 아주 건강하고 활동적이지만, 때때로 지팡이와 보행기에 의존하며 걷습니다. 또 귀부인의 모습을 했다가, 부랑자의 행색을 하는 등 수시로 모습을 바꿉니다. 이 수상한 노인의 정체는 바로 미국의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입니다. 조부모와 함께 생활했고 노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자라온 그는 당시 근무 중인 디자인 회사에서 ‘힘이 약한 노인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상사로부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게 됐죠. 큰 회의감을 느낀 패트리샤 무어는 직접 그들의 삶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모래주머니를 착용하고 주름살을 그려 노인과 비슷하게 분장했습니다. 그러자 평소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이동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고, 버스는 너무 높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가방조차 들기 힘들었고, 원래 사용하던 주방기구들도 버거웠죠. 그녀는 3년 동안 116개의 도시를 누비며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바퀴 달린 가방, 양손잡이용 가위, 저상 버스, 소리 나는 주전자 등 생활 속 유용한 제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패트리샤 무어처럼 조사 대상의 환경에서 직접 상호 작용을 나누며 행동이나 선호를 관찰하는 방법을 ‘에스노그라피’라고 합니다. 에스노그라피는 그리스어로 사람을 뜻하는 ‘Ethno’와 ‘기술(Writing)’을 뜻하는 ‘Graphy’의 합성어로, 쉽게 말해 ‘사람에 관한 기술’이라는 의미입니다. 대화뿐만 아니라, 변화, 제스처, 주변 상황에 대한 반응까지 함께 확인하며, 조사 대상의 솔직한 인사이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좀 더 깊게, 사실적으로 바라보는 방법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자연스럽게 대상을 관찰할 수 있을까요? 직접 사용자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분석하거나, 고정된 환경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를 관찰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관찰법들을 함께 알아봅시다.

1) 홈 비지트- Home Visit
조사 대상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라이프스타일 전반과 사용자와 제품,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작가 케이트 폭스는 그의 저서 《영국인 발견》을 통해 사회적 계층에 따라 집 화장실에 놔두는 책이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노동자들이 속한 계층은 유머 모음집이나 스포츠 잡지를 주로 가져다 놓는 데 반해 중산층은 저속해 보일 것을 우려해 아예 아무것도 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상류층은 노동자 계층과 비슷한 읽을거리를 가져다 놓는데, 실제로 읽기 위해서라기보단 멋진 저택 내에 소박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집의 구석구석은 사람들의 특이한 생활방식을 발견할 수 있는 힌트가 될 것입니다.

2) 쉐도잉 인터뷰- Shadowing Interview
그림자처럼 조사 대상을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병행하는 방식입니다.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대상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기록해 소비자가 의식하지 못한 여러 가지 행태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주로 모바일 제품이나 자동차 등을 테스트할 때 이용합니다.



3) 타운 왓칭- Town Watching
미용실이나 공항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필요하다면 즉석 인터뷰를 통해 동기나 태도 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맥도날드를 예를 들어볼까요? 뭄바이의 맥도날드는 종교적 이유로 메뉴의 반 이상이 채식식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맥도날드가 노숙자들의 잠자리가 되기도 하죠. 어떤가요? 전 세계 맥도날드만 다녀도 꽤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4) 어컴패니드 쇼핑Accompanied Shopping
대상자의 쇼핑에 동행하여 쇼핑과정을 관찰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실제 구매 패턴을 알아보는 데 유용한 기법이며 구매과정, 고려요인, 광고의 영향력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5) 포켓 스토리- Pocket Story
가능한 많은 수의 조사 대상을 선정해, 그들의 소지품을 모두 촬영하는 기법입니다. 소지품으로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 전반적인 유행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메타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6) 비디오 에스노그라피 -Video Ethnography
사전 동의 하에 조사 대상의 행동을 촬영합니다. 이때, 조사 대상을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며 무의식적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한 세탁세제 회사에서는 주부들이 빨래한 뒤 냄새를 맡아보는 행위에 주목해 세제에 좋은 향기를 추가했습니다. 무의식적 행동에서 이끌어낸 비디오 에스노그라피의 대표적 사례이죠.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다양한 관찰법으로 얻어진 정보들을 분류한 뒤,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해야 합니다. 고객이 어떤 방식으로 제품과 접점을 만드는지, 어떤 매력을 느껴서 구매했는지 정리해봅시다. 그다음, 우리 제품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정하고 이를 실제 상품에 적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는 거죠.
아이디어는 책상에서가 아닌, 실제 사용자의 환경에서 발견될 때 더욱 구체적이고, 정확합니다. 인간의 삶은 아이디어로 가득 찬 보물 창고이기 때문이죠. 소비자의 잠재적 니즈를 통찰하기 위해 다양한 에스노그라피를 활용해 보세요. 평소 지나쳐버린 것들 속에서 미래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겁니다.

2021-03-01

신호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L기업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 3개 디자인 공모전IF Design Award, Red dot Award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끌리는 아이디어의 비밀》 《디자인씽킹 for 아이디어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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