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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들춰낸 소비자의 회계장부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에 직면하면서 사람들은 그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이 속에서 소비자들은 기존의 소비 심리를 더 확실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소비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
글 _ 정인호 대표(GGL리더십그룹)



  

코로나 상황 속 드러난 소비자들의 ‘심리적 회계장부’

지난해 5월 4일, 정부는 코로나로 위축된 소비 심리를 회복하고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람들의 독특한 ‘소비 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
서울에 사는 최 씨는 긴급재난지원금으로 100만원을 지급받았다. 모처럼 생긴 목돈에 들뜬 최 씨는 평소 비싸서 찾지 않던 미용실로 향했다. 그리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30만원을 지불하고 파마를 했다. 분명 똑같은 30만원인데, 전에는 비싸게 느꼈던 그 돈을 과감하게 사용한 최 씨.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에서도 최 씨와 비슷하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다음 두 가지 상황을 함께 살펴보자.






당신이라면, 상황1과 상황2에서 각각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필자가 조사해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황1에서는 ‘티켓을 사지 않는다’라고, 상황2에서는 ‘티켓을 재구매한다’라고 응답했다. 상황1과 상황2는 30만원의 동일한 경제적 손실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같은 가격이라도 그 돈을 어떻게 얻었는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행동을 ‘심리적 회계장부(Mental Accounting)’라고 하는데, 이는 분명히 똑같은 액수를 지출하거나 획득했음에도 마음속 가계부에 다른 계정으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앞선 사례의 최 씨도 정부에서 받은 100만원을 본인의 근로소득과 다른 계정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씀씀이가 늘어난 것이다. 분명 열심히 일한 노동의 대가로 받은 100만원이라면 그렇게 과감하게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연장에서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30만원이지만, 내 돈을 내고 얻은 30만원과 선물로 받은 30만원이 나의 심리적 회계장부에 서로 다른 계정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실제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됐던 지난해 5월엔 국산 정육 매출이 전년 대비 317% 증가했다. 갑자기 생긴 긴급재난지원금이 소비자들의 ‘심리적 회계장부’에 ‘공돈’으로 기록되며, 한우 소비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소비자들의 심리적 회계장부를 들춰낸 셈이다.

같은 돈 다른 가치의 또 다른 사례
코로나 상황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소비자들의 ‘심리적 회계장부’처럼, 우리는 같은 액수의 돈을 다른 가치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하나의 상황을 살펴보자.
어느 날 정장을 한 벌 사려고 아울렛 매장에 들렀더니 32만 5천원짜리 정장이 참 괜찮아 보였다. 퀄리티와 핏도 적당했다. 아내에게 문자로 사진을 보내줬고, 아내도 잘 어울린다고 얘기했다. 정장을 사기 위해 결제하려는 바로 그 순간, 아내로부터 문자가 날라왔다.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같은 원단과 디자인의 정장이 32만원에 팔아!”라는 내용이었다. 당신이라면 5천원 더 저렴하게 사기 위해 10분 정도 떨어진 매장까지 가겠는가? 아니면 그냥 5천원을 더 내고 현재 매장에서 정장을 사겠는가? 실제 실험 결과 다른 매장으로 가서 사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29%에 불과했다. 여기에서의 5천원은 소비자들에게 10분을 투자할 만큼의 값어치가 없었 던 것이다.




이번에는 상황을 바꿔보자. 귤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는데 한 봉지에 1만 5천원이다. 결제하려는 순간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가 보인다. 10분 정도 떨어진 과일가게에서 같은 구성으로 1만원에 판다는 내용이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실험결과, 이번에는 무려 68%의 사람들이 1만원짜리 귤을 구입하기 위해 10분을 이동하겠다고 답했다. 똑같은 5천원, 하지만 29%와 68%의 차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른 결정을 내리는 걸까?
5천원의 가치는 동일하다. 이것을 ‘절대적 가치’라고 한다. 하지만 32만 5천원에서의 5천원과 1만 5천원에서 5천원은 엄연히 다르다. 이것을 ‘상대적 가치’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비를 앞두고 절대적 가치보다 상대적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5천원은 32만 5천원에서 1.53%에 해당되는 적은 액수지만, 귤의 1만 5000원에선 33%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다. 즉, 소비자들은 어떤 가치, 어떤 준거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것이다.
비단 소비와 연관 짓지 않아도, 오늘 소개한 내용은 다양한 상황에서 엿볼 수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이나 TV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볼 수 있듯, 부부동반 동창회에 다녀온 날 부부싸움을 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그 이유 역시 준거점, 즉 상대적 가치 때문이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의 모든 기준을, 가치를 바꾸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소비 심리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중이다. ‘심리적 회계장부’처럼 더욱 극명하게 발현되고 있는 소비 패턴이 있는가 하면,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모습의 소비도 등장하고 있다. 이 사이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과연, 우리의 소비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소비하고 있는가. 그 기준을 알아채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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