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공지능

창의성, 과연 인간의 전유물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할 순 없다’고 말한다. 특히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과 창의성은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분야이며, 오히려 인간이 더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창의성과 창작은 인간만의 전유물일까?

글 _ 이장우 (한국인공지능포럼 회장)



2018년 11월, 연주자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한 연주회가 펼쳐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연주회인데 공연 팜플렛에 특이한 이름이 자리했다. 바로 인공지능 작곡가 ‘EvoM’이 그 주인공이다. 이날 연주회에선 EvoM이 작곡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예술의 전당 개관이래 최초로 인공지능 작곡가가 데뷔한 것이다.
EvoM의 선배 작곡가도 있다. 2017년,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는 인공지능이 작곡하고 대전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한 ‘4차 산업혁명 특별시 대전 음악회’가 열렸다. 당시 공연 안내 책자에는 인공지능 작곡가 에밀리 하웰(Emily Howell)이 소개되었다. 미국 UC 산타크루즈 대학교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작곡가 하웰은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직접 작곡한 ‘유년기의 끝’을 선보였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믿었던 창작, 작곡을 해냈다. 그렇다면 이젠 인공지능도 창의성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인공지능의 창작과 학습, 그 한끝 차이

2018년 10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세계 3대 경매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가 진행하는 경매가 열렸다. 당시 경매장에는 17세기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그림 한 점이 등장했는데, 이 그림에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캔버스의 가운데에만 그림이 있고 바깥쪽은 아무 덧칠도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아직 완성이 다 안된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그림의 낙관이었다. 대부분 화가들이 그림의 한쪽 끝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과 달리, 이 그림에는 알 수 없는 수학 공식만 쓰여 있었다.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극한 이 작품은 무려 43만 2500달러(약 4억 95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낙찰가를 합친 것보다도 두 배나 큰 금액이다. 헌데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던 건, 어마어마한 낙찰가가 아니라 작품의 작가였다. 바로 프랑스 프로그래머들이 개발한 인공지능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단순 모방이 아니라 창작으로 만들어진 그림. 이 그림은 당시 ‘창작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뒤엎어버린 사건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인공지능이 창의성을 갖게 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인공지능 화가는 14∼20세기의 1만 5천여 작품을 학습한 끝에 이 그림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학습한 결과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그려냈을 뿐이다. 쉽게 말해, 수많은 작품을 겹쳐서 만들어낸 그림인 셈이다.





 

창작의 한계

인공지능은 글을 쓰기도 한다. 2016년 6월 영국에서 개최된 ‘사이파이 런던영화제(SciFi London Film Festival)’에 출품된 단편영화 〈선스프링(Sunspring)〉은 인공지능 작가 벤자민(Benjamin)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벤자민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1980년∼1990년대 영화 수십 편과 드라마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그리곤 스스로 학습한 정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는데, 배우들의 대사뿐 아니라 음악, 배경까지 써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대사와 구성이 모호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도 있던 반면, 오히려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는 후기도 있었다.
2017년 4월, 벤자민은 후속작으로 새로운 공상과학영화 〈잇츠 노 게임(It’s No Game)〉을 선보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파업이 한창인 상황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이 로봇은 인간들의 머리에 침투하고 그 중 감염된 시나리오 작가가 인공지능 로봇의 생각을 전달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시나리오 작가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대체된다. 이 영화는 파격적인 스토리로 소재의 참신함은 인정받았으나, 전반적인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간과 인공지능, 둘 사이의 경계
인공지능은 딥러닝을 바탕으로 학습을 통해 창의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경험과 공감, 감성이라는 요소가 빠져있다. 작곡가들이 ‘악상이 떠올라 음악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처럼, 인공지능은 새롭게 떠오르는 영감을 가질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엉뚱한 발상과 기발한 착상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인공지능의 창의적인 영역을 두려워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적인 일들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 어떤 것도 인간만이, 그리고 인공지능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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