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OINT

전자 장부 ‘블록체인’과 온라인 거래 화폐 ‘암호화폐’

글 _ 공병훈(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 일러스트 _ 이혜헌


지난 몇 년간의 거래 기록을 은행이나 카드사에 요청하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기록은 어떤 방식으로 보관되는 걸까? 지금까지 은행, 카드사, 공공 기관 등은 거래 장부를 중앙 서버에 두는 중앙 집중형 금융 시스템을 사용해왔다. 그리고 거래 장부가 해킹되거나 위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안 인력 수급과 최첨단 장비 등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해야 했다. 모든 금융 거래는 장부에 기록된 데이터를 중심으로 이뤄지므로 거래 장부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금융 거래의 핵심인 거래 장부를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지난 2017년 이래 블록체인과 이를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는 많은 이들을 혼돈스럽게 하며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블록체인; 블록(block)과 체인(chain)의 합성어로, 위조와 변조 걱정이 없는 전자 거래 장부


공개 · 분산되어 관리하는 거래 장부

블록체인은 블록(block)과 체인(chain)의 합성어로, 위조와 변조 걱정이 없는 전자 거래 장부를 뜻한다. 블록체인에서는 개개인의 거래가 생길 때마다 데이터가 장부가 되어 ‘블록(Block)’으로 만들어지고 기록된다. 이 블록들은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사슬(Chain)’ 구조를 형성한다. 거래 기록을 담은 블록들이 사슬로 이어져 하나의 장부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거래 장부가 네트워크 참가자들에게 공개되고, 분산해 관리하기 때문에 ‘공공 거래 장부’ 또는 ‘분산 거래 장부’ ‘분산 원장’으로도 불린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가 기록된 장부를 특정 기관의 중앙 서버가 아닌 ‘P2P(Peer-To-Peer) 네트워크’에 분산해 참여자가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한다. 중앙 관리 자체가 없는 것이다. P2P 컴퓨팅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컴퓨터가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기능을 하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개별적인 컴퓨터 또는 동등한 동료(Peer) 사이, 다시 말해 P2P의 기본 조건은 연결된 컴퓨터들, 사용자들 간의 동등한 관계다. 원래 컴퓨터 네트워크인 인터넷은 서로 동등한 수평적 연결망이었고, 그곳의 참여자끼리 평등한 공유와 나눔이 이뤄져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또 각 참여자가 거래 내역을 공유하고 대조하는 과정을 통해 거래 내역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 중앙이 아닌 장부와 연결된 수많은 고객으로부터 해당 거래의 진위를 일일이 판별 받아야 하기에 기존보다 더 높은 보안성을 유지할 수 있고, 해킹과 위 · 변조도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나 공인 기관에 맞선 사이퍼펑크

블록체인 기술은 강력한 암호 기술을 활용하는 활동가들인 ‘사이퍼펑크(Cyperpunk)’에 의해 다국적 기업과 정부 권력의 대규모 감시와 검열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됐다. 미국 수학자이자 프로그래머로 사이퍼펑크 운동 창시자 중 한 명인 에릭 휴스(Eric Hughes)는 “프라이버시는 전자 기기 시대에 열린 사회를 위한 필수 가치이다. 정부와 기업, 조직은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지 않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퍼펑크들은 보호의 수단을 암호(Cypher)에서 찾았다. 이후 사이퍼펑크 모임은 블록스트림(Blockstream), 해시캐시(HashCache), 디지캐시(DigiCash), PGP(Pretty Good Privacy), SSL(Secure Socket Layer) 등 중요한 암호 및 거래 기술을 만들었다. 결국 그들의 노력은 정부나 은행 같은 공인 기관 없이도 암호를 통해 양자 간에 거래의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대를 열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트코인’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를 강타한 비트코인(Bitcoin)은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가 발표한 논문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 시스템》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사토시는 논문에서 P2P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중지불을 막는 방안을 소개했다. 이중지불이란, 참가자가 자신의 돈을 거래에 사용한 뒤 해당 거래가 제외된 장부를 배포해 결제를 취소시키고, 해당 금액을 다른 거래에 재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토시는 이중지불을 막는 해답을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로 구현했다. 2009년도에 비트코인 코어(Bitcoin Core) 프로그램이 공개되면서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된다. 비트코인은 10분마다 새로운 거래 내역을 담은 신규 블록을 생성해 기존 블록에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새로운 거래 내역이 담긴 신규 블록은 네트워크 참여자 중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유효한 거래로 인정된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방법으로 제3자 기관의 개입 없이 거래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한가지 명확히 해둬야 할 점은 비트코인은 수많은 암호화폐의 한 종류일 뿐, 암호화폐 자체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암호화폐;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이 없고,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화폐



암호화폐 VS 기존 화폐

암호화폐는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이 없고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화폐를 말한다. 그래서 초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온라인 상에만 표현되는 화폐라는 뜻에서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 또는 ‘가상화폐’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는 화폐라는 의미로 암호화폐라고 불린다.
암호화폐는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P2P의 빠르고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지만, 정부가 원하면 더 찍어낼 수 있는 기존 화폐와 달리 유통량이 한정돼 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로는 비트코인 외에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에이코인, 대시, 리플 등이 있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마치 온라인으로 주식을 거래하듯 각 암호화폐의 가격 등락을 지켜보며 적절한 시기에 구입하고 단기적인 시세차익을 본 후 팔아버리거나, 장기투자를 한다. 암호화폐는 특별한 용도를 위해 발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플은 전세계 여러 은행들이 실시간으로 자금을 송금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로토콜겸 암호화폐다. 리플코인(Ripple Coin)이라고도 불리며, 화폐 단위는 XRP로 표시된다. 암호화폐는 처음 고안한 사람이 정한 규칙에 따라 가치를 매긴다. 또 정부나 중앙 은행에서 거래 내역을 관리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정부가 화폐의 가치나 지급을 보장하지 않는다.
암호화폐는 기존 화폐와 비교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우선 화폐 발행에 따른 생산 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이체나 송금 등의 거래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또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에 저장되기 때문에 보관 비용이 들지 않고, 도난이나 분실의 우려가 없어 가치 저장 수단의 기능도 뛰어나다. 반면, 거래의 비밀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마약 거래나 도박, 비자금 조성을 위한 돈세탁에 악용될 수 있고, 과세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탈세 수단으로 쓰일 우려가 있다. 정부가 암호화폐의 가치나 지급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큰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2018년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의 수는 1600여 개를 넘어섰고, 현재 많은 국가들과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에 뛰어들었다. 단순한 개인간 거래를 넘어 글로벌 차원의 결제 방식으로 활용되는 사례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과 국가 권력, 그리고 금융자본의 통제와 감시로부터 자유를 되찾으려던 사이퍼펑크의 꿈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2019-12-01

WORK > JUMP U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기

    최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