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INEMA

인간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채피〉 & 〈로봇, 소리〉

글 _ 정현목(중앙일보 기자)




플랫폼 경제의 핵심기술 중 하나가 인공지능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인공지능 서비스 경쟁을 벌이며, 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플랫폼 전략 구축에 매진하는 이유다.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는 앞서 소개한 바 있지만, 이번엔 다른 차원의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인간과 교감하는 인공지능,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다. 인간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은 어쩌면 인공지능이 장차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일지도 모른다.

먼저 2015년 개봉한 범죄액션 영화 〈채피(닐 블롬캠프 감독)〉. 범죄액션 장르지만, 실은 한 인공지능 로봇의 성장기에 가깝다. 영화의 배경은 날로 범죄율이 치솟는 요하네스버그, 도시 치안을 위해 경찰 로봇까지 개발된 곳이다. 천재 로봇개발자 디온(데브 파텔)은 자신이 만든 고도의 인공지능을 폐기될 운명의 경찰 로봇에 업로드하지만 범죄현장에 휘말려 갱단에게 로봇을 빼앗기고 만다. ‘채피’라 불리게 된 인공지능 로봇은 신생아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 개발됐으나 물을 빨아들이는 스폰지처럼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배워 나간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주변환경과 부닥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한 결과다. 자신의 보호자 격인 갱단 멤버들에게 속아 범죄를 저지르는 등 시행착오 속에 성장하며 자아를 형성해가는 채피의 모습은 한 인간의 성장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습을 통해 진화하는 인공지능, 이게 채피의 전부는 아니다.

채피는 자신을 악당으로 몰아 제거하려 하는 무기개발자 빈센트(휴 잭맨)의 음모에 맞서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내려 한다. 감정을 갖고서 주체적인 행동을 하는 인격체로까지 성장한 것이다. 세상을 학습해가는 과정에서 채피는 스스로를 ‘흰 양’들에 둘러싸인 ‘검은 양’에 비유한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인식(또는 괴리감) 또한 커져갔던 것이다. 인간의 성장통에 해당하는 아픔이다.

영화는 종반부에 채피의 입을 통해 ‘검은 양도 양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색깔이 검거나 흰 건 표면적인 차이일 뿐, 양이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 SF영화들이 보여준 것처럼 언젠가 과학기술이 발전해 인간의 뇌가 채피의 인공지능처럼 데이터화 될 수 있다면, 영화 속 ‘의식 스캔’이 실현될 수 있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는 없어지는 것 아닌가. 영화 〈채피〉가 인류에게 던지는, 의미 있는 화두다.

같은 해 개봉한 한국영화 〈로봇, 소리(이호재 감독)〉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 또한 인간과 같은 36.5℃의 온기를 지닌 듯한 로봇이다. 영화는 실종된 딸 유주(채수빈)를 찾아 10년 동안 전국을 헤매는 아버지 해관(이성민)과 ‘소리’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로봇 간의 교감을 그렸다. 모두가 해관에게 ‘딸 찾아 삼만리’의 고행을 그만두라고 말할 때,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인공지능 로봇(추락한 감청 위성)이 나타난다. 로봇은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R2-D2처럼 생겼지만, 각종 언어에 능통한 건 물론이고 통화기록으로 위치추적까지 할 수 있다. 해관은 이 로봇이 딸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 여긴다. 그리고 ‘소리’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해 소리로 대상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해관은 ‘소리’를 통해 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되고, 평소 딸에게 신경 써주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귀찮을 정도로 질문이 많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과 교감하는 ‘소리’를 딸처럼 애틋한 존재로 느낀다. 딸을 찾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소리’가 애정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 몇몇 장면에서 소리는 감정이 있고, 해관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이 영화는 기계로만 여겨지던 로봇이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따뜻한 온기에 실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인공지능 로봇과 6개월간 동거한 노인들의 심리와 생활을 조사한 결과,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교감은 초보 단계지만 이미 시작됐고,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교감이 인간 사이의 교감 또는 그 이상의 수준이 되는 시대엔 ‘인간성’이나 ‘인간적’이란 말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인간이지만 ‘인간도 아닌’ 것 같은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일 테니 말이다.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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