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처방전

아군도 공격하게 만드는 스트레스 "당신의 스트레스, 안녕하신가요?"

많은 직장인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을 겪는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지난 2019년엔 세계보건기구(WHO)가 번아웃 증후군을 문제 현상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인간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라고 판단한 것이다.
글 _ 정가영(책 《면역력을 처방합니다》의 저자, 히포크라타의원 원장)

의사들은 종종 대상포진 환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원래 환자분 몸에 있던 것인데,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지니 병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를 의학용어로 ‘기회감염’이라고 한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면역시스템 덕분에 질병을 일으키지 못하던 바이러스들이 신체의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감염증상을 유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이 밤마다 순찰할 때에는 범죄 사건이 일어나기 어렵지만, 경찰의 감시가 느슨해지면 그 틈을 타 불량배들이 사건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을 느슨하게 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로 ‘속’상하다
스트레스를 받는데 왜 면역시스템이 약해질까? 바로 스트레스가 면역세포의 개체 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약해진 면역시스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관이 바로 ‘장’이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단 긴장한다. 긴장은 교감신경의 활성도를 높이고, 부교감신경의 활동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부교감신경이 담당하는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장의 면역시스템을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과도한 스트레스는 장의 기능을 약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과민성대장증후군’이다. 긴장하면 설사나 변비를 유발하는 현대인에게 상당히 흔한 이 질병도 결국,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스트레스의 장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내장기관은 아주 얇은 막으로 쌓여 있는데, 이 막은 ‘상피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상피세포들은 서로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세포 간의 접합부를 ‘치밀이음부’라고 한다. 한데 스트레스는 이 치밀이음부를 느슨해지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장누수증후군(손상에 의해 장 점막의 결합이 약해지면서 세포 사이의 틈으로 여러 물질이 들어갈 수 있는 상태)’을 일으킨다. 심지어는 장벽에 구멍이 뚫려 해로운 물질들에 대해 무방비 상태가 되고 염증성 질환에 그대로 노출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장누수증후군을 예방하고 치밀이음부를 견고하게 하는 방법은 바로 평안한 마음이다. 우리는 스트레스에 올바르게 대응하고 적절히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면역시스템이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되면 우리 속도 편안해진다.

나를 공격하는 스트레스 
장내에 유해균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유해균들을 잘 관리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해균의 힘이 강해진다. 염증 물질을 마구 분비하고, 우리 몸의 미생물 생태계를 자신들에게 우세한 상황으로 만든다. 이때, 참으로 어처구니없지만, 우리의 면역세포들도 유해균의 편을 들게 된다. 마치 정권이 바뀌면 권력을 잡은 세력에 편승하는 인간 사회와 비슷하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조절 T세포’를 꼽을 수 있다. 조절 T세포는 평소엔 염증 억제 역할을 담당하는 우리 몸의 평화유지군이다. 하지만 유해균이 우세한 상황에서는 이 조절 T세포들이 오히려 염증을 일으키는 악성 세포로 변신한다. 그 결과 우리는 여러 가지 질병,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필자에게 피부 질환으로 치료받던 환자가 있었다. 오랜 치료 끝에 서서히 호전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서 즉각적으로 피부 증상이 악화됐다. 스트레스로 아군마저 유해균의 편을 들고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치료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염증반응, 증상 악화는 단 몇 분 만에도 가능하다.




필자가 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조절하세요”라고 말하면, 환자들은 이 말을 모호한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그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밝혀진 만병의 근원이다. 사실 스트레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삶에 리듬을 주고,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스트레스가 개인의 한계치를 벗어날 때 발생한다.
만약 요즘 스트레스가 좀 과하다고 느낀다면, 불필요한 스트레스부터 줄여보자. 자극적인 뉴스, 자랑으로 가득 찬 SNS,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코인 그래프에서 잠시 멀어지는 건 어떨까?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 또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스트레스에 대응할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 말이다.

2021-07-01

정가영: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히포크라타의원의 원장이다. 국제기능의학회 · 대한가정의학회 · 대한임상암대사의학회의 정회원이며 환자들의 주체적인 건강 관리를 위한 건강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면역력을 처방합니다》, 역서로는 《암은 대사질환이다》 등이 있다. 홈페이지: hippocrata.com/ 블로그: blog.naver.com/dr_na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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