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처방전

면역력 저하 신호 생활 속 질환

춥고 건조한 계절이 찾아오면 집마다 창고에 넣어뒀던 가습기를 꺼낸다. 그런데 작동시키다 보면 물이 부족하거나 오류가 있을 때 알람이 울리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기계도 문제가 생기면 사용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하는 우리의 면역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면역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때 몸의 주인에게 알려주는 신호들이 있다.
글 _ 정가영(책 《면역력을 처방합니다》의 저자, 히포크라타의원 원장)




가장 흔히 만나는 경보, 몸살

면역시스템은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힘이 약해지거나, 통제력을 잃기도 한다. 그중 우리가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것이 바로 ‘몸살’이다. 몸살은 과도한 업무로 인해 며칠 이상 거의 쉬지 못하거나 수면 부족이 이어지는 경우,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우 흔히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이다.

필자는 카페인에 민감한 편인데, 디카페인인 줄 알고 일반 커피를 마셨다가 밤을 새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온몸이 저릿저릿한 몸살을 경험했다. 이렇듯 몸살이 오면 전신의 근육, 관절 마디마디가 쿡쿡 쑤시고 아프다. 동시에 힘이 쭉 빠지는 무기력감도 찾아온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다는 말이 딱 맞는 그런 상태가 된다. 이것은 내 몸의 여러 세포들이 ‘이젠 더는 무리야. 우리도 쉴 시간이 필요해. 제발 좀 가만히 쉬어!’라고 외치는 신호다. 폭염주의보, 대설주의보와 같은 날씨예보를 무시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면역시스템에 더 큰 문제가 생겨 결국 중대한 질병의 위협에 놓일 수 있다.

 

 

생활 속 기회감염
필자가 재수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자습 시간에 갑자기 “으악!” 하는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그 친구는 늘 입병, 구내염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구강 점막에 생긴 궤양 부위에 약을 발라 달라고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날도 약을 바르던 중 쓰라린 통증 탓에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도 입안의 궤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 질환의 정식 명칭은 ‘아프타성 구내염’인데, 주로 젊은 층에 잘 발생하고 대부분이 피로가 원인이다. 특히 이 병은 워낙 재발을 잘해서 ‘재발성 아프타성 궤양’이라는 진단명이 따로 있을 정도다.
과로하고 피곤할 때마다 입 주변에 작은 폭탄을 맞는 사람들도 많다. 입꼬리 옆이나 입술 위로 수포들이 옹기종기 함께 올라온다. 나중엔 그 수포가 터져서 나온 누런 진물이 입 주위 피부에 눌러 붙기도 한다. 이것은 ‘헤르페스(Herpes)’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단순포진(Herpes Simplex)’바이러스로 헤르페스 구순염이라고도 한다. 바이러스 감염성 질환이기는 하나, 실제로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몸에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소에 아무 증상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괜한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내 몸속 세포들이 군인처럼 단단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이 군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바이러스가 슬금슬금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면역시스템이 약해지고 느슨해지면 눌려서 지내던 바이러스들이 “야호~! 이제 군인들이 약해졌으니 다시 활동해보자!”라며 활개를 친다. 이런 것을 의학 용어로 ‘기회감염’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대상포진을 꼽을 수 있다. 대상포진이 발생하면 몸의 한쪽 편으로 심한 통증과 감각 이상이 나타나며, 수포가 발생한다. 발생 부위에 따라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신경통의 후유증이 남고 그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 그래서 대상포진은 올바른 치료가 무척 중요하고, 개인에게 맞는 항바이러스제를 제대로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바로 이런 기회감염들이 생긴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감염의 원인, 면역력 저하 
구내염이든, 대상포진이든 이러한 기회감염이 찾아왔다면 면역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첫째, 가능한 한 쉬어야 한다. 퇴근 후 씻고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새벽 2~3시에 잠드는 습관을 고치지 않는다면 튼튼한 면역력을 가질 생각은 접어야한다. 둘째,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신선한 식품,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밀가루와 설탕으로 범벅이 된 인스턴트 음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고 있다면 면역력에 중요한 장내 미생물 대신에 유해균을 열심히 키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누구나 아는 뻔한 말이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개발하고 실천하자.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직격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몸의 알림에 민감해져라 
만약 면역력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그 숫자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단기간의 노력으로면역력을 높였다고 해서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면역력이란, 주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오늘 먹은 음식, 날씨,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오후에 봤던 주가폭락 뉴스, 그리고 지난밤 얼마나 깊이 잠을 잤는지 등 나의 생활 속 모든 것들이 면역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건강염려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 하나하나와 자신의 건강 상태 간의 상관관계를 찾느라 매우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는 면역력 수치나 변화의 추이를 확인할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행동하는 것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보다 똑똑한 완전 자동화 시스템(Full Automatic System)으로 구동되고 있는 면역시스템이 나에게 알림 신호를 보낼 때, 그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몸살, 구내염과 같이 흔히 발생하고 또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는 질환들에 주목하자. 큰 병으로 가기 전의 길목에서 ‘면역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호들이 왔을 때, 자신의 생활습관을 점검해보고 몸을 챙기는 것이 건강한 면역력을 갖기 위한 첫걸음이다.



2021-02-01

정가영: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히포크라타의원의 원장이다. 국제기능의학회 · 대한가정의학회 · 대한임상암대사의학회의 정회원이며 환자들의 주체적인 건강 관리를 위한 건강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면역력을 처방합니다》, 역서로는 《암은 대사질환이다》 등이 있다. 홈페이지: http://hippocrata.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dr_natural

LIFE >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기

    최상단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