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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 교수

최재붕 교수는 ‘문명을 읽는 공학자’라고 불린다. 비즈니스와 기계공학, 인문학 바탕의 동물행동학과 기계공학 등 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연구한다. 스마트폰이 나온 지 어느새 10년, 그는 《포노 사피엔스》라는 저서에서 스마트폰을 뇌와 손처럼 사용하는 신인류의 탄생을 말했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를 맞아 교육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우리는 그 변화에 어떻게 발맞춰야 할지 그의 통찰이 궁금하다.

글 _ 배나영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시대
마음의 표준을 바꾸는 시간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시대

최재붕 교수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은 신인류의 생활공간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문명의 교체 현상이며,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 발맞춰야만 새로운 문명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죠. 한데 코로나19 이후 포노 사피엔스 문명은 생존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개학이나 온라인 쇼핑까지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최재붕 교수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는 교육의 방법과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이 뇌이자 손인 사람들이에요. 언제나 검색이 가능한 인류입니다. 우리의 지적 능력은 암기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검색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판단될 거예요.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판단하는 ‘메타인지’가 중요합니다.”
정부에서는 코로나19의 확진자 동선을 텍스트로 된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발표했다. 이런 방식이 지금까지 우리 문명의 표준이었다. 그런데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표준은 다르다. 확진자 위치와 동선이 나오자 대학생들은 오픈소스 코드를 이용해 지도 기반의 코로나앱을 만들어 공유했다. 표준이 달라지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려면 그런 세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가야 해요. 코로나앱이 필요하냐 아니냐, 내가 코로나앱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의 문명을 이끌 겁니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80%

 

지난해 종영한 TV프로그램 〈영재발굴단〉에는 구글에서 공유하는 오픈소스를 보며 스스로 코딩을 배우고 게임을 만드는 초등학생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전히 PC방에서 게임을 하기 바쁘다. 그래서 부모들은 걱정이다.
“개미를 관찰하면 일개미의 80%는 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하는 20%만 남겨두면, 다시 그중의 80%는 놉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예요(웃음). 어느 세대에나 열심히 공부하는 20%와 잘 노는 80%가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제가 관심 있는 건 80%입니다. 공부를 잘하고, 공부가 적성에 맞는 아이들은 지금처럼 공부하면 돼요. 나머지 80%가 앞으로 뭘 할 수 있느냐가 문제죠.”
세계적인 유튜브 스타인 8살 꼬마 라이언은 작년에 약 301억 원을 벌었다. 라이언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2430만 명이다. 우리나라에도 구독자 수 2400만 명의 7살 유튜버 보람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애들이 무슨 유튜브냐’며 보람이에게 안 좋은 시선을 던진다.
“우리나라 4~7세 인구가 138만 명이니까 보람이의 구독자 90% 이상이 해외 구독자라고 추측할 수 있어요. 보람이는 이미 글로벌 스타입니다. 1년에 300억 정도 벌어들일 만하죠. 이제 우리는 보람이의 성공비결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새로운 문명 생태계에선 공부가 재미없고, 공부에 소질이 없는 80%의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한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보는 20%에 속하지 않아도 충분히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력만 있으면 도전하는 세상

최재붕 교수는 유튜브 외에도 웹툰 · 웹소설 플랫폼, 게임 산업 등의 변화를 주목한다. 네이버 웹툰이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고, 웹툰 작가 중 소득 상위 20명의 평균 수입은 17억이 넘는다. 작품 한 편으로 40억을 벌어들인 웹소설 작가도 있다. 온라인 게임도 프로스포츠로 정착했다.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 이상혁의 연봉은 50억 원이다.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면 80%에 해당하는 학생들도 꿈을 꿀 수 있어요. 웹툰 작가로 20위 안에 들면 대기업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습니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스펙이 좋아야하고, 면접도 잘 봐야 합니다. 하지만 웹툰 작가되는 데 스펙이나 면접실력이 중요하진 않죠. 새로운 생태계가 커지는 만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교육의 기준도 달라져야 해요.”
웹툰이나 게임, 유튜브 같은 새로운 생태계에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학벌이나 인맥, 스펙보다 실력이 중요하다.
“지금 유튜버가 되겠다는 아이들은 예전 같으면 방송국 PD를 꿈꾸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무조건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이 산업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잘 알려줘야죠. 학부모나 교사들이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스스로 경험해보고 직접 크리에이터에 도전하면서 유튜브 도전기를 만들어 아이들과 공유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마음의 표준을 '사람'에게 향하는 시간

우리 문명의 표준에서 반찬 가게를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목좋은 지역에서 발품을 팔아 가게를 알아보고, 인테리어를 하고, 전단지를 뿌려 손님을 모으려 할 것이다. 반면 포노 사피엔스들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사람을 모으는 장소가 꼭 오프라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동네의 공유 주방을 얻고, 반찬을 고객에게 전달해 줄 배달 업체와 계약을 한다. SNS로 홍보를 하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최근 미국에서는 쇼피파이(Shopify)가 아마존을 맹추격하고 있습니다. 쇼피파이는 2시간 만에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아마존을 꺾을 유일한 기업으로 각광받고 있죠. 우리나라 요식업체들의 경우, 5년 후 생존율이 10%에 불과합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 표준을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포노 사피엔스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튜버를 하든, 웹툰 작가가 되든,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 팬덤을 만드는 힘이 필수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술, 철학, 문학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를 두루 섭렵하면 좋습니다. 책을 비롯해 다양한 창작물을 보는 것은 다 도움이 됩니다.”
최재붕 교수는 아이들의 과감한 도전을 응원한다. 진짜 잘할 수 있는 일,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많이 암기하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시대다. 새로운 문명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내 마음의 표준을 시대의 표준으로 바꾸어 나갈 때다.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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