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 그릇

길고도 오랜 빵의 여정

글 _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빵은 밥이되 밥이 아니다. 그리고 빵은 우리말이되 우리말이 아니다. 삼시세끼 차진 밥을 먹어야 비로소 배가 찼다는 느낌을 받았던 우리 조상들에게 밀가루를 반죽해 부풀려서 구워낸 빵은 그저 낯선 서양의 음식일 뿐이었다. 서양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우리 땅에 들어온 서양인들도 점차 많아짐에 따라 빵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서양병(西洋餠)’이나 ‘우랑(牛囊)떡’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렸을 뿐 우리말로 쉽사리 자리잡지 못했다. 포르투갈어 ‘빠웅(pao)’이 일본어 ‘팡(パン)’을 거쳐 들어와 20세기 초에 우리말의 ‘빵’으로 자리잡았으니 근대 이후 들어온 흔한 외래어 중 하나일 뿐이다.

빵은 밥이 아니고, 우리말도 아니었다는 증거는 우리말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 4장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란 구절이 그것이다. 영어 성경을 보면 ‘Man shall not live on bread alone’이라 되어 있으니 분명 빵일 텐데 ‘떡’으로 번역이 된 것이다. 이 땅에 성경이 전해진 19세기 후반, 성경 번역자의 고민이 느껴지는 사례이기도 하다. 음식을 알아도 우리말에는 없으니 딱히 쓸 말이 마땅치 않다. ‘밥’이라고 쓰자니 예수님이 밥을 드신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밥과 비슷하되 가루를 내어 빚어낸 음식인 ‘떡’으로 번역한 것이다. 개역 성경이 나오기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빵은 ‘빵’이 아닌 ‘떡’으로 둔갑해 있었다.

이렇듯 제 자리를 잡지 못하던 빵이 비로소 자리를 잡은 증거는 갖가지 빵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식빵’으로 불리는 빵이 가장 앞서 증거를 보여준다. ‘식빵’은 ‘食빵’일 텐데 참으로 요상한 이름이다. 말 그대로 ‘먹는 빵’ 혹은 ‘먹을 빵’ 정도로 분석이 되는데 먹지 않는 빵이 없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자 ‘食’은 ‘먹다’란 뜻도 있지만 ‘밥’이라는 뜻도 있다. ‘食’이 ‘밥’이 될 수 있으니 ‘식빵’은 ‘밥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빵이 식빵인 것이다. 빵이 밥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세대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밥 대신 빵을 먹는 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말이자 뜻풀이가 될 수도 있다.

건빵, 술빵, 찐빵도 각각 한몫씩 한다. ‘건빵’에는 마르다는 뜻의 한자 ‘乾’이 포함되어 있으니 건빵은 말 그대로 마른 빵이다. 빵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 맛으로 먹는데 ‘마른 빵’이라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술빵’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죽을 부풀려야 하는데 이때 막걸리를 써서 술빵이라 하는 것이다. ‘찐빵’은 또 어떤가? 본시 빵이라는 것은 오븐이나 화덕에 구워내야 하는 것인데 김을 올려 쪄냈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찐빵은 빵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단어들이 만들어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그 음식도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이다.

밥상에서 빵이 밥을 대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밥상’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이미 ‘빵’은 어울리지 않으니 ‘식탁’ 또는 ‘테이블’이어야 비로소 ‘빵’을 논할 수 있다. 설사 밥상이란 말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뼛속 깊이 각인된 밥에 대한 집착을 빵이 이겨낼 수는 없을 듯하다. ‘따스한 밥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의 의미여서 우리의 정신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빵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편리하게 먹고 싶을 때, 색다른 맛으로 먹고 싶을 때 얼마든지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삼시세끼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와 아내가 안쓰러울 때 먹어도 좋다. 그런 면에서 빵이 고맙기도 하다.

빵이 밥을 대체하지 못할지라도 이미 서양의 음식과 식문화는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리의 배를 채우고 입의 즐거움을 주는 음식의 영역에서는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식당은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의 구별이 있지만 우리 밥상은 그런 구별이 없다. 한중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섞이고 있었고 양식이 점차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밥상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니 나쁜 일은 아니다. 이렇게 섞이는 것이 밥상이고 식탁이다.

빵으로 대표되는 서양 음식의 기나긴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바다에서 길을 잃어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팡’, 중국의 남쪽 항구에 도달한 ‘서양병’이 우리 땅에서는 ‘빵’으로 정착을 했다. 전병과 팡이 만나 단팥빵이 만들어지고, 오븐이 아닌 찜통을 만나 찐빵이 만들어진다. 앞으로 빵이 어떻게 변모하고 우리의 밥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빵을 비롯한 모든 음식은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섞이고 또 발전한다. 그것이 음식이다.

아침을 걸러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밥과 국이 있어야 비로소 아침밥이라고 믿는 이가 있다. 반면에 아침밥보다는 잠이 더 좋아 아침을 거르는 이도 있다. 바쁜 아침 시간에 밥 하고 국 끓일 시간이 없으니 각종 빵으로 대체하는 이도 있다. 어느 편도 옳고 그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아침 시간을 보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간혹 자신의 아침 방식을 강요하는 이가 있어 문제다. 반드시 밥과 국이 있어야 한다고 가족을 괴롭히는 이가 있고, 빵과 우유로 누군가의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가 있다. 아직은 빵이 밥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으니 적당히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길고도 오랜 빵의 여정이 끝날 것이다.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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