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 그릇

잡탕일까? 퓨전일까?

글 _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부대찌개’라 부르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난해하다. 고기가 아닌 벌건 햄과 소시지가 몇점 들어 있다. 갖가지 채소와 당면이 자작자작한 육수에 잠겨 있다. ‘사리’라는 것을 따로 주문하면 라면도 하나 딸려 나온다. 햄과 소시지는 우리의 전통 음식이 아니다. 당면(唐麵)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유래한 면이다. 라면은 최근에 개발된 면인데 중국에서 기원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찌개, 탕, 전골 어느 것에도 갖다 붙일 수가 없다. 그냥 ‘잡탕’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미군이 우리 땅에 주둔하게 된다. 미군 부대에서 여러 가지 물자가 흘러나오게 되는데 식재료도 예외가 아니다. 햄과 소시지도 그 중 하나다. 먹다 남긴 것, 혹은 버린 것이지만 배가 고프니 이것저것 함께 넣어 끓여낸다. 이 음식의 시작은 이렇다. 이름이 딱히 없다 보니 미군 부대 주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해서 ‘부대찌개’란 이름을 붙였다.

부대찌개의 시작은 이렇게 슬프지만 결국은 우리의 음식으로 자리잡는다. 햄과 소시지를 자유롭게 구할 수 있고,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더 풍성해진다. 갖가지 야채와 사리가 추가되니 더 먹음직해진다. 의정부와 송탄에서 시작됐지만 서울에도 터를 잡기 시작한다. 그런데 서울의 부대찌개는 엉뚱하게 ‘존슨탕’이란 이름을 내걸게 된다. 1966년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존슨이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존슨 대통령이 이 음식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이 음식을 먹어보았을 리도 없지만 어쨌든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의 이름이 음식 이름이 된 유사한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부대찌개를 바라보노라면 찌개, 국, 전골, 탕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다시 떠오르게 된다. 이 모든 음식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공통점은 바로 ‘국물’이다. 어느 것이든 물을 넣고 끓인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어떤 재료를 어떻게 넣느냐의 차이로 보인다. 사전에서는 전골을 두고 여러 재료를 전골틀에서 끓여내는 것이라 풀이하고 있으니 ‘비싸고 크면 전골’이고 ‘싸고 작으면 찌개’라는 해석이 우리의 감각에 맞는 듯하다. ‘탕’은 한자에서 온 것이니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풀이와 구분이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찌개와 국은 비교적 명확하게 구별되는 듯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찌개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기도 한다. 이 지역에는 국만 있을 따름이다. 전골은 음식점에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탕’이 국을 뜻하는 한자인 것은 맞지만 ‘탕’이 붙은 음식은 국, 찌개, 전골 모두에 쓰인다. 결국 공통점은 분명히 있되 그 경계는 모호하다. 때로는 구별이 되지 않거나 뒤죽박죽 섞어 쓰는 일도 많다.

‘국’은 한 글자로 된 단어이니 어원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이 예나 지금이나 ‘국’이다. 한자로는 ‘갱(羹)’이라 쓰지만 요즘에 국을 이렇게 부르는 일은 없다. 국을 높일 때는 ‘메탕’이라 하기도 하고 한자를 써서 ‘탕(湯)’이라고 쓰나 ‘탕’은 요즘에는 반드시 높이는 뜻은 아니다. 찌개는 이상하게도 옛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다. 한때 ‘찌게’로 쓰는 사람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찌개’ 하나로만 쓴다. ‘찌개’는 아무래도 ‘찌다’에서 나온 듯한데 ‘찌다’와 ‘끓이다’는 의미가 엄연히 다르니 좀 애매하다. 게다가 ‘개’는 보통 ‘덮개’ ‘오줌싸개’에서 알 수 있듯이 도구나 사람을 뜻하기 때문에 ‘찌개’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전골’은 궁중 음식에서 기원을 찾는데 어원을 따로 밝히기는 어렵다.

음식문화가 다르니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기도 어렵다. 한중일 삼국은 그나마 음식들이 비슷해, 조금씩 뜻이 다르더라도 통할 수 있지만 영어로는 난감하다. 국은 영어로 ‘soup’으로 번역되는데 ‘수프’와 ‘국’은 엄연히 다르다. 찌개는 ‘stew’로 번역되는데 재료가 조금 달라서 그렇지 조리법이나 모양새는 비슷하다. 그러나 찌개는 건더기뿐만 아니라 국물 맛도 중요한데 스튜는 건더기에 더 비중을 둔다. 전골은 우리말에서도 정체가 불분명하니 영어로 옮기기는 더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처럼 다양한 국과 찌개가 발달한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국물에 집착을 하며 후룩후룩 열심히 먹는 경우도 없다.

부대찌개가 독립된 음식으로 자리를 잡고 이것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거대 프랜차이즈도 있지만 부대찌개는 한마디로 잡탕이다. 동서양을 막론한 재료, 한중일을 섭렵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이 부대찌개다. 엉뚱하게 된장콩이 올라가기도 하고 수제비가 첨가되기도 한다. 모든 음식이 그렇다. 국경을 넘나들며 재료와 조리법이 섞이는 것이 음식이니 부대찌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국이든 탕이든 전골이든 본래 그런 음식이다. 여러 재료에서 고유의 맛이 우러나와 어울리는 것이 국이다. 인간은 극단적인 잡식동물이다. 잡탕은 ‘퓨전(fusion)’이란 말로 미화될 수 있다. 이렇게 잡탕, 아니 퓨전으로 먹는 것이 잡식동물 본연의 자세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국, 찌개, 탕은 모든 재료가 어우러지는 맛으로 먹는다. 그렇게 어우러진 맛이 ‘끝내주는 맛’이라면 바다와 산을 넘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2019-05-01

LIFE >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기

    최상단으로 가기